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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정과 칭찬하며 살자! (2018.12.02)
설교자     계강현 목사
예배명     주일 연합예배
성경본문     누가복음 19:1-10
 
 
본문 내용
1 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2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3 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4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6 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7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8 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Content


말이 곧 인생이고, 인생이 곧 말이다. 성공한 사람의 배경에는 반드시 성공을 만들어 준 말이 있고, 행복한 사람의 배경에는 반드시 행복을 만들어 준 말이 있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무한한 창조력과 힘을 가진 인생 최대의 에너지다. 때문에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잘 쓰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라고 말씀은 백번 옳다. 말이 곧 그의 미래를 결정한다. 말 속엔 크고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여러분은 한 주간 어떤 말을 주로 하면서 살았나? 살리는 말인가? 죽이는 말인가

오늘 나는 여러분과 인정과 칭찬하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여러분은 부모로부터 인정받고 칭찬 들으며 살아오셨나? 아니면 인정받지 못하고 칭찬은커녕 비난만 듣고 살아오셨나? 부모로부터 인정과 칭찬 받지 못하고 산 많은 자식들이 자존감에 문제를 가지고 사는 것을 본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인정하거나 칭찬해보셨나? 아니면 누구 하나 인정하지 못하고 칭찬하지 못하며 살고 있나? 누군가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 누군가를 인정하고 칭찬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1. 사람을 인정하는 말은 곧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1을 보면 창조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말로는 모든 것을 다 창조라고 한 가지로 번역했지만, 성경원어인 히브리말에는 창조란 말이 세 가지나 다르게 쓰이고 있다. v1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할 때 창조는 원어로 빠라인데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동물을 지으실 때 쓰인 창조는 ~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 말은 무에서 유가 아니라 있는 재료인 흙을 가지고 변형시켜서 (동물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또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원어로 야촤~를 썼는데, 이 말은 어떤 것을 그대로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모방은 외형적인 모방이 아니라 내면적 모방을 말하는 데, 즉 하나님의 내면적 속성을 그대로 모방해서 하나님의 형상처럼 지었다는 뜻이다.   

1:26-28,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이렇게 인간 남녀는 하나님의 형상’(image)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다. 그래서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른다. 진화론에서처럼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된 게 절대로 아니다. 동물은 흙으로만 지었지만 인간은 흙과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코에 불어 넣어 생명체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가지신 신성으로 지어진 고귀한 존재란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인정하는 말은 바로 하나님 형상으로 지어진 이 존재 가치를 그대로 인정해주는 말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데 특별히 생각해서 좋은 말을 해주라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존재 가치를, 그 사람의 내면에 소유하고 있는 고귀한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주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인정하는 말은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이 자기 형상을 따라 만든 고귀한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행위인 셈이다.  

흙 한줌이 말했다. “내 안에는 인삼 씨가 들어있다.” 물 한줌이 말했다. “내 안에는 잉어 알이 들어있다.” 모래 한줌이 말했다. “내 안에는 사금이 들어있다.” 공기 한줌이 말했다. “내 안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 그 말을 듣고 흙과 물과 모래가 그것도 말이냐?”며 비웃었다. 그러자 공기가 대꾸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데에 숨어 있는 거야! 나 없이 숨 쉴 수 있는 생명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맞는 말 아닌가

얼마 전 우리나라 한 기간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인간존재의 가치 기준으로 보는 것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적인 것, 외모, 돈 등의 순으로 생각한다는 보고를 읽은 적이 있다. 정말 무엇이 인간존재의 가치여야만 할까? 하나님은 인간 본연 자체의 가치가 있음을 말씀하신다. 비록 아담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은 왜곡되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재창조에 의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우리들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 값을 주고 새 것이 된 것이기에 누구 말마따나 부르는 게 값인 인생이 되었다! 그것을 인정해주라는 것이다. 옆 사람에게 인사하자. “당신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당신은 특별한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를 인정하셨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삭개오란 사람이 뽕나무 위에서 주님을 만났다. 그리고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감격해서 말했다. v8,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재산을 내놓으라거나 도적질 한 것 갚으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율법에는 남의 것을 빼앗은 사람은 원금의 1/5만 더 주면 되었다. 그런데 삭개오는 네 배나 갚겠다고 나선 것이다. 무엇이 삭개오를 이렇게까지 감동시킨 것일까? 주님이 뽕나무에 있는 삭개오를 보시고 하신 말씀에 그 비밀이 들어 있다. v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 중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니고데모는 신분이 세리였고 키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설교를 듣던 성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설교가 은혜가 있어 그런 줄 알고 더 큰 소리로 설교했다. “그때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사는 동네에 오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 나아갔으나 키가 작아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쯤 되자 성도들이 ~!” 하고 웃어버렸다. 그때서야 목사님은 실수한 것을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순간 재치를 발휘했다. “그때 삭개오가 나타나 이렇게 외쳤습니다. ‘!, 그 자리는 내 자리야, 빨리 내려와!~’” 나도 최근에 새벽기도 큐티 설교를 하면서 예레미야를 이사야라고 한참 했나 보다. 앞에 앉아있던 권사님이 이사야가 아니라 예레미야에요!”하는 바람에 알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타나는 증세 중 하나다

삭개오는 로마세관에서 일하는 세리장이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식민 지배하던 때에 백성들에게서 로마에 바칠 세금을 걷는 직업이 세리다. 직업상 그들은 자국민들에게 욕을 먹었다. 그러나 더 욕을 먹은 이유는 중간에서 세금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당시에 세리들은 백성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매기고는 일부를 착복하는 파렴치한 죄를 지었다. 가뜩이나 강점 지배에 다 빼앗긴 백성들인데, 마치 우리 말 속담에 벼룩의 간을 내어 먹는자들이었다. 삭개오도 예외는 아니었을 거다. 세리 중에 대장격인 세리장이었으니 그가 얼마나 백성의 피를 빨아먹어왔을지 짐작이 간다. 이런 삭개오에게 한 가지 콤플렉스는 키가 작은 것이었다. 얼마나 키가 작은지 사람들이 놀려댈 정도였다. 자기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손가락질, 세금착복으로 인한 사람들로부터의 따돌림 그리고 자신의 콤플렉스인 키 때문에 삭개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싫었다. 세금을 받을 때 외에는 사람들을 거의 안 만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이 자기 동네 여리고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길목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예수님 주위에 몰려있어서 도저히 작은 키로는 예수님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리라 예상되는 길로 미리 달려가서는 뽕나무 위에 올라가 예수님을 기다렸다. 마침내 예수님이 자기 앞을 지나가셨다. 그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냥 지나치시지 않고 머물러서더니 자신에게 말을 거셨다. “오늘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그 순간 삭개오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예수님이 내 집에서 주무시고 가시겠다니! 삭개오는 너무 놀라고 기뻤다. 삭개오는 나무에서 빨리 내려와 함박웃음을 띠고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다. 사람들은 이걸 보고는,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하고 수군거렸다.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말씀하신 삭개오야, 오늘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는 삭개오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그건 삭개오야, 모든 사람이 너를 무시한다고 해도 나는 너를 귀하게 생각한다!” 바로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껏 자기를 무시하던 동네사람들 앞에서 이 말씀을 해주시다니! 이 말은 삭개오의 마음과 그 인생을 뒤흔들어 놓았다. 인정해주는 말은 혼자 있을 때 해주어도 감동이 되지만,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하게 될 때 그 힘은 몇 십 배로 증가된다.  

결국 예수님의 인정하는 말 한마디가 삭개오를 송두리째 바꿨다. v8,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결국 그 말 한 마디에 삭개오는 이런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vv9-10,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 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잃어버린 자, 다른 사람은 다 삭개오를 무시하고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주님은 그를 인정하고 그를 찾아와 마침내 구원해주셨다.  

오늘 우리 예수님은 마치 잃어버린 자 같은 죄인 된 우리를 인정해주시고 찾아와 구원하신다. 내가 그분을 찾기도 전에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를 구원해 주셨다. 그런 우리를 위해 이미 목숨까지 주신 분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5:8) 아직은 부족하고 믿음도 약하고 조그만 일에도 쉽게 쓰러지고 또 넘어지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우리이지만, 우리 주님은 그런 우리를 인정해주신다. 여전히 우리를 인정하시고 사랑하신다. “너는 내 것이다!” 말씀하신다.

 

3. 인정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칭찬이다.

어느 기독교 가정 사역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녀들이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말은, “네가 제대로 하는 게 뭐 있어?”(43%)였다. 반면 부모가 자녀들로부터 가장 많이 상처받는 말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요?”(73%), “엄마, 아빠 때문에 창피해 죽겠어요.”(47%)라는 말이었다. , 자녀는 부모가 인정해 주지 않고 무시할 때, 반대로 부모는 자녀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가장 큰 상처를 받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서로 이런 말만 골라서 하고 있지는 않나?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말의 습관으로 이런 말을 내뱉은 적은 없는지 생각해보라. 인정과 칭찬하는 말은 사람을 살리지만 무시하고 비난하는 말은 사람을 죽인다.   

사람은 무시당할 때 가장 분노하게 되어 있다. 어린아이들에게 꼬마야!”라고 불러보라. 당장 뭐라고 반응하는가? “, 꼬마 아니에요!” 그럴 것이다. 나름 컸고 이름도 엄연히 가지고 있는데, “꼬마!”라고 무시당하니 불쾌하다는 얘기다. 5:22에도 보니까 말로써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는다.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이요, 또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라고 하셨다. 사람에게 노하는 것, 멍청하다고 조롱하는 것, 바보라며 무시하는 것 모두가 살인에 해당하는 심판을 받게 되고, 공회에 붙잡히고, 지옥 불에 들어갈 만한 죄라는 지적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사람을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리저리 위아래를 살펴보고 뭐가 있는 것 같으면 허리 굽혀 인사하고, 없어 보이면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고개를 흔드실 것이다.    

반대로 가장 힘이 되는 말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소중하단다.”는 말을 부모로부터 들었을 때였고, 부모들은 누구보다도 우리 부모님을 존경해요.”, “부모님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자녀에게 듣는 것이었다. 또 남편들은 당신 밖에 없어요. 당신이 최고예요.”라는 아내의 말을 들을 때, 아내들은, “당신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축복이야!”라는 남편의 말을 들었을 때 가장 힘이 되었다고 답했다. 조사결과 모두가 인정하는 말을 힘이 되는 말로 꼽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정하는 말이야말로 모두에게 힘이 되고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소나무가 진달래에게 말했다. “가지만 앙상한 가을날의 네 모습, 딱도 해라.” 이때 진달래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눈에도 안 띄는 봄날의 네 꽃은 어떻고?” 소나무는 기분이 나빴다. 이런저런 생각에 밤잠도 못잤다이튿날 소나무가 진달래에게 말했다. “네가 봄에 피우는 그 연분홍 꽃은 정말이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없어.” 진달래가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아름답긴 뭐~, 눈서리에도 지지 않은 너의 그 푸른 잎새야말로 그렇게 미더울 수가 없지.” 소나무는 기분이 좋았다어제는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는지, 오늘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소나무는 잘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신체적인 욕구와 애정의 욕구가 해결이 되면 그 다음으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일어난다. 특히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옮겨가는 청소년들은 자기를 어른으로 인정해주길 바란다. 나아가 하고 있는 일을 잘 한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하며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자라간다. 사람은 인정을 받을 때 변화되고 새롭게 성장나기 시작한다. 인정한다는 것은 소극적으로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대해 비난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는 칭찬하는 것이다. 인정과 칭찬은 조금 다르다. 인정은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적 말을 해주는 것이고, 칭찬은 성품이나 성과나 한 일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해주는 것이다. 칭찬이 최고의 인정이다

인간의 뇌는 무게가 약 150g이고, 세포 수는 약 140억 개 정도 되는데, 보통 사람은 평생 10%도 사용하지 못한 채 죽는다고 한다. 갤럽 박사는 아인슈타인도 뇌를 15%밖에 사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람이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년 전 우리나라 최민식 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 참여한 루시라는 영화가 바로 이런 걸 다룬 영화다.  

그런데 이 잠자는 인간의 잠재력을 깨우는 위대한 도구가 바로 칭찬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젠소올(Rosenthal) 교수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IQ 테스트 자료로 고동학교 학생들에게 테스트를 한 다음, 테스트 결과를 보지도 않고 5명 당 1명 정도의 아이들을 무차별 선정하여 오늘 테스트 결과 이 아이들은 아주 머리가 우수한 아이들이라고 칭찬해주었다. 그 후 1년이 지나 똑같은 아이들에게 지능 테스트를 해보니 칭찬받은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지능이 월등히 상승했음을 알 수 있었다. IQ20이상 올라간 아이도 있었다. “멍청한 놈”, “이 바보야”, “이 돌대가리야라는 말을 들으면 잠재력이 깊숙이 침체되어 버리지만, “! 대단하네!” “잘했다, 잘했어!”, “넌 역시 뭔가 있어라고 칭찬해주면 잠자던 잠재력이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칭찬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 법칙이 있다.

1) 진심으로 하는 것이다. 사기꾼들은 입에 발린 칭찬을 남발한다. 환심을 사기 위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그런 사기꾼의 칭찬은 순수하지가 않고 결국 상처만 준다. 칭찬은 내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해야 한다. 못생긴 사람에게 참 미인이네요.” 그러면 칭찬은 아니다. 부부싸움을 해서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부부에게 오늘 얼굴이 참 좋아 보이네요.”하면 입에 발린 거짓 칭찬이 되고 만다. 마음이 담긴 진심어린 칭찬을 할 때 힘이 되는 것이다.  

2) 찾아서 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칭찬을 하려면 찾아서 해야 한다. 상담학자 목사님이 어느 날, 한 아버지와 상담을 했다. 아들이 가출하고 문제를 일으켜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것이다. 이 목사님이 그 아버지에게 아들을 볼 때마다 칭찬을 해주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 아버지가, “칭찬할 게 뭐 있어야 칭찬을 하죠. 매일 문제만 일으키고 경찰서에서 전화오고 그러는데 칭찬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때 목사님이 일러주었다. “그렇습니다. 나무랄 게 너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칭찬은 찾아서 하는 겁니다. 선생님, 아들이 잘 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조그만 것이라도 그때마다 칭찬해 보십시오.”하고는 돌려보냈다. 다음 주에 상담했던 그 아버지가 와서, “칭찬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한번은 아내랑 외출하고 늦게 들어오니 아들이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놓았더란다. 그래서 다른 것은 제대로 하는 게 없는데, 설거지 하나는 잘 해놨네!”라고 칭찬했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그건 칭찬이 아닙니다. 칭찬하려면 부엌을 깨끗이 해놓았구나, 솜씨가 깔끔하구나.’라고 해야지 뒷말을 붙이면 안 됩니다. 칭찬을 할 때는 칭찬만 해야 합니다.”라고 말해주었더니 ~! 그렇군요. 제가 칭찬을 들어보지 못해서.”라고 겸연쩍어 하더란다. 칭찬을 들어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칭찬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칭찬하는 가정을 만들어야 자녀들이 칭찬하는 것을 배우게 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못하는 것만 자꾸 문제 삼으면 더 못할 뿐 아니라, 잘하는 것마저 잃어버린다. 그러나 좋은 점, 잘하는 걸 찾아 칭찬하기 시작하면 잘하는 것은 더욱 잘하게 된다. 이것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른다.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 그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여신(女神)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의 비너스)는 그의 사랑에 감동하여 여인상에게 생명을 주었다. 교육심리학에서는 심리적 행동의 하나로 교사의 기대에 따라 학습자의 성적이 향상되는 걸 지칭한다. 찾아서 칭찬해보라.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3) 문제가 있는 것을 더욱 칭찬하는 것이다.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나무라기만 하면 더욱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것을 낙인 효과라고 부른다. “못한다.” “못한다.” 자꾸 말하면 정말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나 못하는 것도 잘한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잘 하는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나는 학생 때 공부를 잘 못했다. 어린 시절 이사를 하도 다녀서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를 4군데나 전학했다. 5학년 때부터 그랬는데, 더구나 당시에 전학을 하려고 하면 워낙 학생 수가 60명이 넘던 시절이라, 자리가 없는 거다. 그러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까 5,6학년 공부가 엉망이 되었다. 중학교는 뺑뺑이 돌려서 갔다. 고등학교는 시험치고 갔는데 별로 공부를 못했다. 2때 아버지가 개척교회를 하면서 더더구나 공부할 여건이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대학을 가야하는데 갈 실력이 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우리 강현이는 머리가 좋은데 노력하지 않아서 그래. 조금만 노력하면 공부 잘 할 거야!” 그 말이 사실 나에게는 기분 좋은 말이었다. 저도 모르게 내 머리는 좋다. 난 하면 반드시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군대를 갔다 와서 재수해서 대학을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한 말이 계속 나에게 힘이 되었다. 어머니의 칭찬이 오늘 나를 있게 도와준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도와주셨지만 말이다.  

예수님도 찾아서 칭찬하셨고 문제가 있을 때는 더욱 칭찬하셨다. 16에서 베드로가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v16)라고 고백하자 예수님은 즉시로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크게 칭찬을 해주었다. 베드로는 원래 이름 시몬(흔들리는 갈대)처럼 문제가 있는 믿음의 소유자였다. 주님을 보고 물 위로 걷다가 금방 빠지기도 했고,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흔들리는 시몬을 반석 같은 믿음의 소유자라 칭찬하셨다. 주님은 베드로의 좋은 점을 찾아 칭찬하고 문제 많고 흔들리는 갈대 같은 믿음을 더욱 칭찬해서 반석 같은 믿음이 되게 하셨다. 칭찬에는 이처럼 사람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 있다. 우리 주님은 마지막 날 우리가 목장사역을 통해 영혼구원, 제자 만들기의 열매를 가지고 설 때에 우리를 와락 품에 안으시고 우리 눈에 눈물을 닦아주시며,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할지어다!”하시며 칭찬해주실 것이다.  

성도 여러분, 가정과 일터에서부터 서로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말을 시작하자. 그럴 때 그 말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말의 열매를 먹고 살게 되어 있다. 말이 미래다. 아멘.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계강현 목사 201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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