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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스런 제자가 되는 비결 (2019.02.10)
설교자     계강현 목사
예배명     주일 연합예배
성경본문     마태복음 10:34-42
 
 
본문 내용
32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다."
34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35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37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의인이라고 해서 맞아들이는 사람은,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Content

(오늘은 음성 설교가 제공되지 않습니다.)

 



지난 1월에 열린 ‘2019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손흥민 선수를 앞세워 우승을 꿈꾸던 우리나라가 그만 8강에서 카타르에게 져서 탈락하고 말았다. 2002년 월드컵 4, 2012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을 기억하는 우리 국민들은 이번 경기에서 우승의 영광을 기대했다가 그만큼 실망도 컸다. “어떻게 카타르 같은 나라에게 지냐?”하고 실망했는데, 결과를 놓고 보니 카타르는 우승할 만한 실력을 갖춘 팀이었다. 반면 박항서 감독이 이끌고 있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8강에서 일본에 져서 우리와 똑같은 8강 동률을 이뤘지만, 그걸 대하는 베트남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최근에 박항서 감독을 영입한 이후에 베트남 축구가 좋은 성적을 연이어 거두면서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의 영웅이 되었고 그의 키즈들은 영광과 찬사를 받고 있다. 이번에도 8강에서 일본과 비슷한 경기를 펼친 것에 대해 크게 뿌듯해하고 있다. 이걸 보면 꼭 1등해햐 영광과 찬사를 받는 게 아니다.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하게 되면 영광과 찬사를 받는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평가받는 하늘나라 평가가 꼭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베트남 축구가 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피나는 훈련과 극심한 체력단련과 전술훈련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냥 되는 게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제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제자로서의 꼭 필요한 훈련과 영적 단련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제자가 되어 고난을 받으라는 설교보다 복 받으라는 설교를 더 좋아한다. 그럴 때 목사도 복을 강조하는 설교를 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그래서는 마지막에 영광은커녕 수치나 당할 것이고, 땅에 버려져 사람들의 발에 밟힐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누릴 하늘 영광을 알려주시면서 지불해야 할 대가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에게 칭송을 받는 영광스런 제자의 비결을 배우자.

 

1. 예수님을 시인해야 한다.

vv32-33,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다.” 

예수님이 꽤 유치한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네가 밥 사주면 나도 밥 사주고 니가 안 사주면 나도 안 사준다. 뭐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아 그렇다. 그러나 여기 이 말씀은 그런 얘기가 아니다. 이건 마치 미국 시민권자를 미국이 책임진다는 의미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란 영화는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주제로 한 전쟁영화이다. 미국의 라이언 가문에서는 네 형제 모두가 이 전쟁에 참전하였는데, 세 형제가 이미 전사하고 막내 제임스 라이언일병만이 생존해있음을 알게 된다. 이미 아들 셋을 잃은 어머니 라이언 부인을 위해 미 정부는 막내 제임스 라이언을 구하기 위해 특별한 작전을 지시하는데, 그것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한 명의 병사를 구하기 위해서 소대원이 죽어야 하는 이런 작전을 실행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하여튼 미국이란 나라는 자기나라의 시민들을 챙기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이런 식으로 미국 정부는 미국 시민권자가 만약 외국에 나가서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져서 구해주지만, 시민권자가 아니라면 책임이 없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시인하는 하늘나라 가족이면 예수님이 우리를 책임져주신다는 말씀이다. 앞으로 핍박받을 제자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다. 핍박받을 때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씀도 주셨지만, 그때 나를 부인하면 부인하고 나를 시인하면 시인하겠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야 머리에 총 겨누고 예수를 시인할거냐? 부인할 거냐?” 대답을 강요할 경우는 없겠지만, 우리가 예수를 부인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곧 부인하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데, 예수 믿는 걸 부끄러워하고 주위에 알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입원해서 회사 사람이 문병 왔는데, 성경책 들고 병문안 온 목사님 일행을 마주치고서 너 교회 다녀?” 깜짝 놀라게 하는 분들이 있다.  

사람들이 왜 교인인 걸 침묵하며 숨길까? 조롱 내지 핍박이 두려워서 그럴 수 있다. ② 또은 예수 믿는다고 공개하면 그대로 살아야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워 숨긴다. 어쨌든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예수를 안 믿어서 그렇다. 정말 예수가 인류의 죄를 위해 오신 구세주이고 이분을 통해서 내가 구원 얻었고 이분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 얻을 수 없다는 걸 믿는다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주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을 정말 믿는다면 안 믿는 사람을 두려워할 수가 없다. 숨기고 있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잘못 되었든지, 예수님의 성품이나 능력을 모르고 있든지, 궁극적으로는 안 믿는 거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수다스러워 지는 분들이 계시다. 정말 믿으면 주위에 자꾸 자랑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떠들게 된다. 의무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된다. 부끄러워해서 숨기는 것은 안 믿는 거고 부인하는 거다. 부인하면 나도 부인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숨기려고 하고 감추려고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안 믿는 것임을 알고 예수 영접하고 확신 갖고 인정받는 제자가 되길 바란다.

 

2. 가족으로부터의 핍박을 예상해야 한다.

vv34-36,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35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여기서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거라는 말씀에 은혜 받는 분도 계실 거다.! 내가 성경대로 살고 있구나!~’ 이게 그런 얘기가 아니다. 예수 믿는 것으로 인해서 가족 간의 갈등, 균열이 생길 것을 얘기하시는 거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것에 중간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중간에 있는 것은 안 믿는 거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중간 입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동정녀 탄생하지 않았나? 이걸 안 믿는다면 예수님은 불륜 관계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자기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갈 자가 없다고 하셨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과대망상증 환자든지 독선에 빠진 자다.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게 아니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형되어야만 하는 중범을 저지른 죄인이다. 예수에 관해 믿지 않는다면 기독교인들은 거대한 사기극에 휘말려 있는 것이다. 중간지대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로 믿든지, 불륜의 관계에서 태어난 거짓 과대망상증 사기꾼으로 여기든지, 둘 중의 하나지, 중간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에 대해서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분을 정말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 우리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든지, 아니면 정신병자, 사기꾼 취급을 하든지 해야 한다. 예수를 성인 중의 한 사람, 훌륭한 도덕선생, 세계 최대 종교의 지도자,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믿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를 안 믿는 거다. 예수 자신이 우리에게 그런 여지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 중의 하나를 택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랑 먼 관계에 있는 사람이 예수를 믿을 때 미쳤나보다 할 수 있겠지만, 가까운 가족이 예수를 믿을 때 거기에는 갈등과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진짜 예수를 알면 믿든지, 사기꾼으로 취급하든지 둘 중에 하나다. 그래서 v37,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이게 냉정한 말씀 같지만, 무정한 게 아니라 사실이다. 예수님에 관한 한 중간 입장이 없기 때문에 안 믿는 부모 입장에 선다면 내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연히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이걸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생각해야지, 어떻게 피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안 믿는 가정에서 처음 믿는 분들, 당연한 일로 생각하시고 핍박을 견디고 이겨내셔서 마지막 날,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아무개 내 제자야. 이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게 되었어. 내 제자야.” 시인 받는 제자가 되길 바란다.

 

3. 죽기를 각오해야 한다.

v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요즘은 십자가가 무슨 액세서리인 줄 생각하는데, 십자가는 로마제국 당시 중범죄를 지은 사람을 사형시키는 참혹한 사형방법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는다는 뜻이다. 사형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곳까지 십자가를 지고 걷는다. 십자가 지고 가는 사람을 보면 당시 사람들은 저 사람이 죽으러 가는 구나.’하고 다들 알았다. 예수 믿는 거 죽는 거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죽기를 각오하고 사는 것이다. v39,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어설프게 믿어가지고는 재미도 없고 예수님 얼굴에 먹칠이나 하고 방해꾼 노릇이나 한다. 죽기로 목숨을 걸고 예수 믿으면 제일 먼저 삶에 주어지는 것이 자유함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비굴한 삶을 산다. 그런데 죽음을 각오하면 자유하다. ‘죽으면 천국 가지그러는 사람은 못 당한다. 그럴 때 기적을 체험하고 보람도 있다. 누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하나님만 아시겠지만, 정말 예수님을 영접하신 분들은 이런 각오가 있더라. ‘물러날 수 없다.’, ‘망해도 할 수 없다.’ 그런 각오들이 있다. 자연히 그렇게 된다. 목숨 걸고 믿는 거다. ‘믿어보다가 말겠다.’, ‘적당히 믿어보겠다.’ 이거 예수 믿는 거 아니다.  

너무 교회에서 제자 됨의 대가에 대해 말하지 않아서 엉터리 신자를 키우는 것 같다. 그런데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게 영적 원칙이다. 예수님이 우릴 죽이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게 아니라, 살리려고 이 말씀을 하신 거다. 우리가 이걸 일상생활에서 경험한다. 아내들 중에 남편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치고 남편의 사랑받는 사람이 있나? 아마 없을 거다. 어떤 분들은 남편에게 사랑받기를 포기하고 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며 살아야지.’ 그러고 산다. 그런 아내들 가운데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이 꽤 된다. 반대로 아내가 자기에게 복종하고 자기를 존경하길 원하는 남편들이 있다. 그런 분들치고 아내가 순종하는 사람이 있나? 아마 없을 거다. 그러나 어떤 남편들은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고 아껴주고 귀하게 여겨준다. 그런 남편들 중에는 아내가 순종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이게 죽으면 살고 살면 죽는 원칙이다.  

우리들 가운데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고, 남편이 이렇게 잘 나가고 있고, 아들이 어떤 대학에 갔고 그런 얘기를 시키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 중에 남들에게 인정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자기만 모르지 남들은 다 안다. 목사가 목회성공에 대한 꿈을 버리고, 어떻게 하면 주님 앞에 올바른 목회자가 되고 올바른 교회가 될까 생각할 때 목회에 재미를 느끼고 교회도 행복해진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원칙을 체험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믿어야 행복한 신앙생활하게 된다. 안 그러면 신앙생활에 부담만 계속 되고 재미가 없다. 화끈하게 목숨 내놓고 예수 믿는 우리 금광 교우들이 되자!

 

4. 시선을 천국에 맞춰야 한다.

목자 목녀들 중에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다. 시선을 천국에 맞춰놓고 사는 것 같아서 그렇다. 그래서 천국에서 가장 멋진 집은 목자, 목녀의 집일 거라고, 뭘 바라고 하지 말라고, 주님이 기억하신다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만 섬겨도 주님은 인정해주신다고, 나의 본업은 목녀,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부르셨고,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는 확신이 감격이 되었습니다. 사명을 확인하니 우선순위가 달라졌고 우선순위를 목녀와 목장에 두니 부업은 알아서 하셨습니다.’ 이런 간증을 하기도 한다.  

반면에 어떤 분들은 온통 시선을 이 세상에 두고 사는 분들도 있다. 옆에서 보면서 저렇게 살다가 금방 실망할 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릴 때 구슬치기와 으찌니쌈을 잘해서 구슬을 엄청나게 많이 딴 적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잠이 잘 안 왔다. 어렸을 때는 딱지치기해서 딱지를 많이 따면 으쓱한다. 그런데 중학생만 되면 그런 게 다 우스워진다. 그때에는 구슬, 딱지가 굉장히 중요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다 우스워진다. 청소년, 청년 때는 pc게임이 밤새도록 해도 재미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그런 게 다 우스워진다. 안 그런가?  

이런 게 다 믿음이 어려서 그렇고, 평소에 시선을 하늘에 두는 걸 연습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눈에 꺼풀이 씌어서 잘 보지 못하는 거다. 그래서 주님이 하늘의 보상을 말씀하신다. 하늘의 상이라는 게 공책 노트 연필 같은 거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영광이란 말을 하신다. 엄청난 영광일 것이다. 축구 우승을 하고 돌아올 때 누리는 그런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일 것이다. 우리가 시선을 하늘에 고정시켜야지, 이 세상에 고정시켜서는 하늘나라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은 제자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신다. 그래서 v40,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부부 중에 한 사람을 칭찬하면 십중팔구 배우자가 자기도 칭찬받을 만하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자녀를 칭찬할 때 그러는 부모는 보지 못했다. 자녀를 칭찬하면 부모들은 너무 좋아서 허허 한다. 예수님이 지금 그런 얘기를 하는 거다. 목숨을 바쳐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 그 제자들에게 대접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대접하는 것 같이 생각하시는 거다. 그래서 제자들이 마음 아프면 예수님이 마음 아파하시고, 제자들이 기뻐하면 자신이 기뻐하시고 제자들이 흡족해하면 예수님도 흡족해하신다. 그래서 보상하실 때 똑같이 보상하신단 얘기다.  

이걸 보면서 큰 사역자를 섬기면 상급을 받는 걸 알 수 있다. v41,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의인이라고 해서 맞아들이는 사람은,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예언자나 의인이나 큰 사역자들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 큰 사역자를 섬길 때 우리는 그 큰 사역자가 받을 상을 동일하게 받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명절 때만 되면 목사를 섬기는 교인들이 있다. 흠도 많고 인격도 부족한 종인데, 그렇게들 챙기려고 하신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아울러 이 말씀에 의하면, 그럴 때 목사가 받을 복을 함께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목장 후원 선교사가 오면 목장식구들이 진심으로 섬겨서 선교사들이 좋아한다. 따듯한 환대를 받는 분위기가 좋다고들 얘기한다. 주님이 이걸 기억하셔서 선교사가 받을 상을 여러분에게도 나눠주실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천국에 가면 깜짝 놀랄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서, 우리가 그분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받을 상을 나눠주는 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교사로 외국에 나가지 않고도 동일한 상을 나눠받을 수 있는 혜택을 누리는 거다.

어떤 사장이 돈벌이가 확실한 사업에 나를 동업시켜 준다면 얼마나 큰 영광인가? 큰 사역자를 섬기므로 상급을 받는다. 주님을 섬기는 제자를 내 몸처럼 사랑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거다. 당연하다. 주님이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이런 보상은 목사나 선교사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모든 사역자에게 그렇다.  

그래서 작은 사역자를 섬기므로 상급을 받는다. v42,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예언자나 의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작은 제자들을 생각할 수 있다. 목자 목녀를 생각해보라. 목자 목녀가 물론 대가 없이 섬기고, 섬김으로 존경도 받고 보람도 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목자 목녀에게 섬김만 강요하고 있으면 여러분에게 손해다. 여러분이 상 받을 기회를 왜 놓치는가? 그래서 함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명절 때 되면 좀 선물도 하고 그래라. 그럴 때 목자목녀들이 지치지 않고 힘차게 일할 수 있다. 맨날 목자목녀에게 섬김만 강요하면 그들도 지친다. 내가 잘 안다. 목장 안에 식구들 문제로 진을 다 빼지 않도록 해주고,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어야 밖에 vip들을 섬기는 일을 할 에너지가 생긴다. 그런 걸 떠나서도 섬김만 받으면 여러분 자신에게 뭐가 유익하겠는가? 이 말씀의 논리에 의하면 목자 목녀들을 섬기면 여러분에게도 유익하고 동일한 상을 받는다.  

결정해라. 예수님이 우릴 꼬시려고 그러나? 사실이어서 그러나? 여러분 자녀들이 새로운 지역에 이사 와서 학교나 교회에 잘 적응하지 못할 때 어떤 사람이 불러주고 놀이터에도 데리고 가고 그러면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 거다. 부모의 마음이 그렇듯이, 예수님의 마음이 그러신 거다. 그래서 고마워하시며 하늘나라 상급과 영광으로 보상하신다.  

주일학교 설교자와 교사들을 잘 챙겨주라. 천사마을, 사랑마을, 예수마을, 비전마을 설교자와 교사들이 있다. 그런데 자기 자녀들 맡기면서 이름은커녕 얼굴도 모르는 부모들이 있다. 이해가 안 된다. 자기 자녀들의 영적인 부분을 챙겨주고 있는데, 그 정도를 알아야 되지 않겠나? 이분들 생일도 좀 기억하시고 명절도 좀 기억하시고 챙겨라. 여기서 냉수 한 그릇은 작은 호의를 의미하겠지만, 필요를 의미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덥고 물을 구하기 힘들다. 이런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라고 표현한다. 그건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교사들 필요를 채워주라. 도우미가 필요하다면 도와주고, 여름성경학교 보조교사가 필요하다면 좀 도와주고, 식사 준비가 필요하다면 좀 서포트해주고 그래라. 그러면 교사들이 받을 상을 여러분도 동일하고 받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천국에 상을 쌓는 일이다.  

말씀을 마치자. 우리 모두 예수님의 영광스런 제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시인하고, 가족에게 핍박받는 걸 예상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믿고, 시선을 천국에 맞추고 사역자들을 대접하면서 살아, 예수님에게 인정받고 많은 상과 영광을 받는 나와 여러분 주님의 제자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 이 설교는 가사원장 최영기 목사님의 설교를 많은 부분 인용했습니다.)


 

하늘나라 백성의 복된 삶을 누리려면… 계강현 목사 2019.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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