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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나라 성벽을 쌓을 때 (2019.03.10)
설교자     계강현 목사
예배명     주일 연합예배
성경본문     느헤미야 4~6:16
 
 
본문 내용
(너무 길어서 생략합니다.)
Content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살던 유대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페르시아 제국 고레스 왕 원년에 있었던 일이다. 세 차례에 걸쳐 유대 포로들이 고국으로 귀환했다. 1차 귀환(B.C. 538) - 총독 스룹바벨/ 성전 재건 2차 귀환(B.C. 458) - 학사 에스라/ 영적 개혁운동, 3차 귀환(B.C. 445) - 총독 느헤미야/ 성벽 재건. 93년 동안 세 번 귀환했다. 에스라는 느헤미야와 동시대 인물로 느헤미야서에도 나오지만, 조금 먼저 사역을 했다. 한 번 외워보라!    

이렇게 3차에 걸쳐 귀환한 유다백성들의 예루살렘 성전 건축과 영적 개혁운동과 성벽 재건은 매번 여러 가지 방해를 겪으면서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은 적들의 방해로 16년 동안이나 중단되었다가 기초를 놓은 지 20년 만에야 겨우 완공했다. 에스라의 영적개혁운동도 이방혼인이라는 죄악과 싸워야만 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도 마찬가지로 원수들의 방해가 심각했다. 적은 백성을 데리고 예루살렘 전 성벽을 재건하기엔 너무 방대한 공사였고, 백성들은 왕에게 세금을 바치느라 가난하였고 집과 밭을 저당 잡혀야 했고, 굶주렸다.(5) 누가 봐도 무모하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그 성벽 재건을 단지 52일 만에 이루어낸 것이다. 이게 예루살렘이 무너진 지 140년 만의 일이다. 그것도 원수들이 집요한 방해 속에 일궈낸 그야말로 기적이다. 이 성벽재건이 왜 그리 중요한가 하면 이 성벽 울타리가 든든하게 지켜줘야 이스라엘 공동체가 모여 성전 중심으로 안심하고 예배하고 하나님나라를 세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성벽 재건 얘기는 오늘 우리의 목장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사역의 얘기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사역을 안전하게 해나갈 수 있을까?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때 크게 두 방면의 공격이 있다. 외부적인 공격이고, 또 하나는 내부적인 공격이다. 그런 공격 속에서 영적 리더십은 진가를 발휘하고 그 공격을 이겨나갈 때 열매를 거둘 수 있다.

 

1. 외부의 공격을 이겨내는 리더십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성벽 공사가 조직적으로 진행되자, 원수들의 방해공격이 시작됐다. 사마리아의 총독인 산발랏과 그의 종 도비야가 그 대표였다. 4:1-3, “우리가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산발랏은, 몹시 분개하며 화를 내었다. 그는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2 자기 동료들과 사마리아 군인들이 듣는 데에서 힘도 없는 유다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 이 성벽을 다시 쌓는다고?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거냐? 하루 만에 일을 끝낸다는 거냐? 불타 버린 돌을 흙무더기 속에서 다시 꺼내서 쓸 수 있다는 거냐?’하고 빈정거렸다. 3 그의 곁에 서 있는 암몬 사람 도비야도 한 마디 거들었다. ‘다시 쌓으면 뭘 합니까? 돌로 성벽을 쌓는다지만, 여우 한 마리만 기어 올라가도 무너지고 말 겁니다.’” 조롱과 공개적인 비웃음을 보낸 것이다. 여러분도 그런 조롱과 공개적인 비웃음을 당한 적이 있나? 그때 어떠했나?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남을 조롱하거나 공개적으로 비웃어서는 안 된다.  

이어서 주변 나라 사람들과 연합 전선을 구축하여 무장공격을 꾀하려 했다. vv7-8, “그 때에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랍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잘 되어가고 있으며, 군데군데 무너진 벽을 다시 잇기 시작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몹시 화를 내면서, 8 한꺼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성을 치기로 함께 모의하였다.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것이었다.” “왜 다 나만 공격해!” 그런 느낌이 든 적이 없나?

건축이 진행되는 단계마다 더욱 야비한 형태의 공격이 들어왔다. 다음에는 한번 만나서 대화로 해결하자는 회유책으로 위장한 암살음모가 이어졌다.(6:2-4) 큰 공사를 하므로 갈 수 없다고 대답하자, 네 번씩이나 똑같은 전갈을 보냈다. 그때마다 느헤미야는 같은 말로 대답했다. 그러자 위험한 중상모략과 비난이 담긴 공개서한을 보냈다.(6:5-8) 느헤미야가 성을 쌓는 것은 페르시아 왕에 대해 반역을 꾀하려는 시도라고 주의에 소문이 파다한데, 한 번 만나서 얘기해보자는 내용이었다. 그때에도 느헤미야는 사실이 아닌 꾸며낸 얘기에 불과하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느헤미야는 정말 위태위태한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마지막에는, 느헤미야를 영적인 곤경에 처하게 만들려고 유대인 제사장을 통해 거짓 예언을 하게 했다. 6:10-13, “하루는 스마야를 만나려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는 들라야의 아들이며, 므헤다벨의 손자인데,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갑시다.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성소 출입문들을 닫읍시다. 자객들이 그대를 죽이러 올 것입니다. 그들이 밤에 와서, 반드시 그대를 죽일 것입니다.’ 11 나는 대답하였다. ‘나 같은 사람더러 도망이나 다니란 말입니까? 나 같은 사람이 성소에 들어갔다가는 절대로 살아나올 수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12 나는 그 때에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매수되어서, 나를 해치는 예언을 하였다. 13 그들이 스마야를 매수한 것은, 나에게 겁을 주어 성소를 범하는 죄를 짓게 하여서, 나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나를 헐뜯으려는 속셈이었다.” 참고로 성소는 제사장만 들어가는 장소이다.  

지금 내가 장황하게 뭘 얘기 하려는 건가? 원수의 외부공격이 집요하고 치밀했다는 얘기다. 우리가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들어 신약교회를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고 할 때 원수마귀는 비상을 걸고 갖은 모략을 다해 주위 사람들을 동원하여 방해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거의 모든 방해공작이 야비한 심리전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게 공격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실망과 두려움을 불어 넣으려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두려움을 갖게 함으로 성벽 재건을 중단하게 하려는 것이다. 6:9, “그들은 우리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겁을 먹고 공사를 중단하여, 끝내 완성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그렇다! 원수의 공격은 우리로 하여금 겁을 먹고 두려워하게 함으로써 영혼 구원, 제자 만들기로 하나님 나라 사역을 중단하고 포기하게 하는 게 목적이다.   

여기에 반해 느헤미야의 모든 공격에 대한 대응책은 오직 한 가지 목적,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성벽 재건을 완성하는 것에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떤 원수의 공격과 방해에도 우리는 교회에게 주신 사명,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자, 성령님의 지원이 있는 영혼 구원, 제자 만드는 사역에 목적을 둔다. 이 목적을 위해서 느헤미야가 취한 구체적인 목표와 방법을 우리도 배우자

    1) 기도생활 원수 산발랏과 도비야의 조롱과 공개적인 비웃음을 듣자마자, 느헤미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 4:4-5, “우리의 하나님, 들어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업신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퍼붓는 그 욕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고, 남의 나라로 끌려가게 하여 주십시오. 5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 그들이야말로 성을 쌓고 있는 우리 앞에서 주님을 모욕한 자들입니다.” 즉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이걸 반사기도라고 한다. 저주를 퍼부을 때 맞서 저주하지 말고 반사! 하면서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느헤미야의 기적의 출발은 다름 아닌 기도에 있다. 그의 리더십은 기도에 기초한다는 말이 맞다. 그만큼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다. 그의 기도의 특징은?  

공동체적인 관심의 기도 -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 즉 경호실장 같은 측근 관리로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영달에 안주하지 않고, 유대에서 온 친구로부터 예루살렘 백성들이 환란을 당하고 있고,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는 소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즉시 슬퍼하며 수일동안 금식기도하기 시작했다.(v4) 그는 예루살렘 공동체를 위한 관심을 기도로 아뢰길, v6, “이제 이 종이 밤낮 주님 앞에서 주님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드리는 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살펴 주십시오.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은 것을 자복합니다. 저와 저의 집안까지도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과 이스라엘의 죄를 회개하며 기도했다. 우리도 나와 가족을 위한 좁은 기도에서 목장과 교회 공동체와 vip와 나라 민족과 선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일보다 선행된 기도 - 우리는 느헤미야를 통해서 만사에 기도가 선행되어야 함을 배운다. 그는 예루살렘의 비보를 듣자마자, 누굴 만나 상의하거나 계획을 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 꿇고 기도했다.(1:5) 그의 기도는 넉 달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2:1)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히 확인될 때까지 그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후에 아닥사스다 왕이 뭘 원하는 지 물어보는 기회가 왔을 때 느헤미야는 먼저 하나님께 기도했다. 2:4-5b,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왕께서 또 나에게 물으셨다. 나는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서, 5 왕에게 말씀드렸다그는 항상 기도를 선행함으로 삶의 지혜를 얻은 사람이다.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확신 속에서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여러분도 무슨 일이 있거든 먼저 기도하라. 어떤 대화를 나눌 때 먼저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러면 지혜 주시고 할 말을 입에 주신다. 언제나 위대한 일은 기도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인생에게는 아무 염려가 없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염려와 걱정뿐인 인생이 되고 만다. 고든(A.J.Gordon) 목사는 기도한 다음에는 기도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하기까지는 결코 기도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목장사역은 기본적으로 기도사역이다. 목자 목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사실 아무 것도 없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목원이 빚져서 사업이 망하겠는데, 뭘 할 수 있겠나? 우울증으로 죽고 싶어 하는데, 뭘 할 수 있나? 부부가 갈등이 심각해 이혼하려는데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전문가가 상담해도 안 되는 문제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일이다. 일 터지고 기도하지 말고, 그것도 있어야겠지만, 그보다 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라. 기도가 전부다. 기도하면 성령이 음성 들려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인도해주시기 때문이다. 기도를 먼저 하면 실수를 줄일 수 있고, 열매를 거둘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 기도로 먼저 승리하는 나와 여러분이기를 축원한다.  

책임지는 기도 - 느헤미야는 하나님, 다른 누군가를 통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고 기도했다. 그래서 1:1, “주님, 종의 간구를 들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을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주님의 종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이제 주님의 종이 하는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여 주시고 왕에게 자비를 입게 하여 주십시오.” 이 일을 이루는데 자신을 사용하여 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고위관직을 내놓고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해 책임졌다. 기도 중에 가장 끔찍한 기도는 자신은 쏙 빼놓고 설교하듯이 기도하는 기도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사랑이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자신은 쏙 빼놓고 정죄하는 식으로 하는 기도는 정말 듣기 힘든 기도이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바리새인적 기도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이렇게 사랑이 부족한데, 제가 그 일에 앞장 선 장본인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야 맞다. 에스더 왕비처럼 그러다가 죽으면, 죽으렵니다.”(4:16) 책임지는 기도를 하나님이 즐겨 들어주신다.   

지속적인 기도 - 느헤미야는 지속적인 기도를 했다. 예루살렘의 비보를 접하자마자, 금식했고, 4개월 동안 주야로 기도했다.(2:1) 왕 앞에 설 때에도 기도했다. 고국에 돌아와서도 기도하며 돌아보았고 기도가 생활화되어 있었고, 원수의 공격을 받는 순간순간에도 그는 항상 기도로 맞섰다. 4:8-9, “한꺼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성을 치기로 함께 모의하였다.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것이었다. 9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비병을 세워, 밤낮으로 지키게 하였다.” 성벽을 지은 후 왕에게 반역을 꾀하려는 소문이 퍼져있으니 한 번 만나자는 회유와 위협에도 6:9,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기도했다. 거짓 예언으로 성소에 들어가게 함으로 명예를 떨어뜨리고 헐뜯으려는 흉계에도 6:14, “나의 하나님, 도비야와 산발랏이 한 일을 잊지 마십시오. 예언자 노아댜와 그 밖에 나에게 겁을 주려고 한 예언자들이 나에게 한 일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기도했다. 성전 개혁을 한 후에도 기도했다. 13:14, “하나님, 내가 한 일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성전을 보살핀 일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정성껏 한 이 일을 잊지 마십시오.” 제사장들을 거룩하게 한 이후에도 기도드렸다. 13:31, “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여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십시오.” 시작과 과정 그리고 마무리가 모두 기도로 점철된다. 그의 기도의 특징은 생활 속에서 순간순간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벽을 완성한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기도의 리더십이고, 느헤미야서는 기도의 책이다.  

    2) 영적 분별력 - 느헤미야의 영적 분별력은 탁월하다. 원수들의 공격의 의도를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다. 조롱과 공개적인 비웃음에는 맞대응하지 않고 저들의 저주를 반사하는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었다. 4:4-5, “우리의 하나님, 들어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업신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퍼붓는 그 욕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고, 남의 나라로 끌려가게 하여 주십시오. 5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 그들이야말로 성을 쌓고 있는 우리 앞에서 주님을 모욕한 자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벽 쌓는 일을 계속했다. 대적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해서 쳐들어오려 하자, 백성 가운데 얼마를 가문별로 칼과 창과 활로 무장시켜 성벽 뒤 낮은 빈터에 배치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백성들을 보고 격려했다. 4:14,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대하고 두려운 주님을 기억하고, 형제자매와 자식과 아내와 가정을 지켜야 하니, 싸워라.” 젊은이들 가운데 반은 일하게 하고 나머지 반은 창과 방패와 활과 갑옷으로 무장하고 성벽을 쌓는 백성들 뒤에 진을 치게 했다. 그래도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위대하고 두려운 주님을 기억하고, 형제자매와 자식과 아내와 가정을 지켜야 하니, 싸워라.”(4:14) 적절하게 격려했다. 짐을 나르는 사람들은 한손으로 짐을 나르고 남은 손으로 무기를 잡게 했다. 성벽을 쌓는 자들도 허리에 칼을 차고 일을 하게 했다. 또한 나팔수를 옆에 두어 어디서든 나팔소리가 들리면 그곳으로 합세하여 싸우도록 지시했다. 한 마을로 와서 만나자는 흉계도 간파하고 네 번씩이나 거절했다. 페르시아 왕에게 반역을 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으니 한 번 만나 얘기하자는 회유와 위협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초지일관 거절한 채 계속 공사를 진행해나갔다. 거짓 예언자를 통해 암살계획이 있으니 성소로 피하라는 예언을 듣고도 그는 원수에게 매수되어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원수의 공격과 방해공작에 맞춰서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게 전부 다 그의 기도생활에서 온 하나님의 지혜이다. 1:5,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  

원수와 싸울 때 우리에게 이런 지혜와 영적 분별력이 정말 필요하다. 우리는 항상 나 자신도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사단에게 누구나 이용당할 수 있다. 목사도 장로도 목자 목녀도 말이다. 그 좋은 실례가 베드로 아닌가? 십자가를 지지 못하도록 막아서서 말리는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16:23) 책망했다. 그래서 우리가 선한 동기, 좋은 의도가 있다고 절대로 안심하면 안 된다. “저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아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여러분은 좋은 의도로 말하는지 몰라도 얼마든지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지혜를 구해서 영적 분별력을 갖고 살아야 한다.  

    3) 비전과 열정(passion) - 결국은 원수는 성벽 재건을 못하도록 갖은 위협과 회유와 방해하는 것이다.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이뤄내고야 마는 비전, 열정을 갖고 있기에 그 목적을 향해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모든 방해공작에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결국 해내고 말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목적을 향한 강한 비전과 열정에서 비롯된다. 우리 교회도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고, 생각도 많고 의견도 많을 수 있고 목소리 높은 사람도 있지만, 삼위 하나님이 소원하시고 명령하시고 지원하시는 영혼 구원, 제자 만들기 라는 교회의 사명에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설득되어 같은 목적을 품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 나라에 참 부흥을 이룰 수 있다. vv21-23, “우리는 이른 새벽부터 밤에 별이 보일 때까지 일을 하였다. 우리 가운데 반수는 창을 들고 일을 하였다. 22 이 기간에 나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밤에는 저마다 자기가 데리고 있는 부하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와 묵으면서 경계를 서고, 낮에는 일을 하여라.’ 23 나도, 나의 형제들도, 내가 데리고 있는 젊은이들도, 나를 따르는 경비병들도,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옷을 벗지 않았으며, 물을 길러 갈 때에도 무기를 들고 다녔다.” 이런 열정이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 주님! 우리에게 이런 열정을 더하여 주십시오.

 

2. 내부의 공격을 이겨내는 리더십

5에는 내부 문제가 나온다. 이젠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동역자들 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 다시 말하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사단이 외부를 흔들려다가 안 되니까 이제 교회 내부를 흔들고 있다. 사실 어떤 문제든지 외부 문제보다 내부 문제가 훨씬 심각한 문제다.  

어떤 문제인가? 백성들이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왔다. 남편들이 성벽 재건에 불려나가 일할 때 부인들이 어려움을 호소한 것이다. v3에 흉년에 곡식을 얻기 위하여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을 잡혔다. v4에 어떤 사람들은 왕에게 세금을 바치기 위해서 밭과 포도원을 잡히고 돈을 빚을 냈다. 또 어떤 사람들은 v5에 빚을 갚지 못하자 심지어 자기들의 자식을 종으로 파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귀족과 부자들에 의해 발생한 문제였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게 되니 공동체 안에서 불만과 원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까닥 잘못하면 성벽 재건은 고사하고, 나라 전체가 내란으로 붕괴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교회도 그렇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참 강하게 대처했다. 외부로부터 핍박이 오면 성도들은 서로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된다. 그런데 교회가 좀 평안해지면 교회 내부에서부터 세속주의가 들어오고 인본주의, 물질주의의 욕심과 질투와 시기와 미움과 이기심이 갈등을 불러 일으켜 서로 헐뜯고, 비난하고, 험담하고, 불평 원망하고, 갈라서고 결국 무너지기 쉽다.    

느헤미야는 그 소식을 듣고 분개했다. 5:6, “그들의 울부짖음과 탄식을 듣고 보니, 나 또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지도자는 분노부터 터뜨리고 나면 안 된다. 그는 먼저 신중히 살폈다. 5:7-8, “나는 그들이 울부짖는 내용을 신중하게 살핀 다음에” 기도하며 신중하게 살필 때 영혼을 실족시키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이 일하게 된다. 그리곤 귀족과 부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책망했다.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어찌하여 같은 겨레끼리 돈놀이를 하느냐고 호되게 나무랐다.” 때론 지도자의 책망이 필요하다. 위로만 받으려 하지 말고 책망을 달게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자다. 또한 대회를 열어서 공개적으로 처리했다.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하겠기에, 나는 대회를 열고서, 8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말하였다.”

감사하게도, 귀족들과 관리들이 (저당 잡은 밭과 집을) 모두 돌려주겠습니다. 그들에게서 (이자를) 아무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죄를 뉘우치며 느헤미야의 말에 순종하기로 결단했다. 가진 자, 먼저 믿은 자들이 없는 자, 나중 믿은 자들을 공감해주고 배려해주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이때도 느헤미야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5:12, “나는 곧 제사장들을 불러 모으고, 그 자리에서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자기들이 약속한 것을 서약하게 하였다.” 일 보러 갈 때와 보고 나서가 다르다. 그래서 서약이 필요하다. 부모님들이 혹시 돌아가실 임박에 예수영접하고 돌아가시면 꼭 동영상 찍어 놔라. “나 죽거든 꼭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해다오.” 안 그러면 믿고 천국에 가셨어도 나중에 안 믿는 가족들 때문에 제사상 차리고 장례해야 한다. 또 느헤미야는 그들을 경계시켰다. 5:13, “나는 또 나의 주머니를 털어 보이면서 말하였다. ‘이 서약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집과 재산을 이렇게 다 털어 버리실 것입니다. 그런 자는 털리고 털려서, 마침내 빈털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럴 때 든 사람이 아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백성은 약속을 지켰고 행복해졌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내부의 공격은 서로 회개하고, 가진 자가 희생하고 신앙 좋은 자가 섬기기로 하고, 허물을 덮어주고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이 하나 되는 방법이다. 철저하게 각자 회개하는 거다. ‘아직도 내가 그까짓 것도 못 받아주는 좁은 마음이구나!’ 회개하고,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 거다. 이게 성숙이다. 내 자존심을 좀 꺾고 내려놓고 공동체가 사랑으로 하나 되도록 나를 좀 희생하는 거다.

어떤 분들은 신앙생활하면서 모든 걸 다 마귀의 공격이라고 하면서 맨날 마귀 내쫓는다고 쉿쉿 거리며 산다. 그러나 자신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외부의 원수의 공격에는 기도하며 대항하고 지혜롭게 물리쳐야 된다. 그러나 내부의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회개하고 공동체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럴 때 거기에서 영적 권위가 생기고 회복이 일어나고 치유와 하나 됨이 일어난다.

느헤미야가 이렇게 요청할 때 왜 귀족들과 관리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쉽사리 포기하고 순종했을까? 그것은 v14ff에 나오는 느헤미야의 솔선수범하는 희생적이고 청렴한 삶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말은 파워가 있었다. 희생에서 영적 권위가 나오는 거다. 그 권위에 복종한 이스라엘 공동체는 갈등이 해결되고 하나 되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공격이 더 거센가? 외부 공격과 내부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걸 이겨내는 리더십으로 계속해서 가정과 목장과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 성벽을 쌓아가길 축원한다. 아멘.


 

변화산 사건의 교훈 계강현 목사 201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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