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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에 감사는 하나님의 뜻 (2019.07.07)
설교자     계강현 목사
예배명     맥추감사주일 연합예배
성경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6-18
 
 
본문 내용
16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Content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을 하나만 들라 하면 언제나 감사. 오늘 본문 v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란 얘기다. “너희가 언제나 감사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건 안다. 너희의 감사가 각자 수준 차이가 있을 거다. 그러나 언제나 감사하는 게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뜻이란다.” 하나님이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반년을 돌아보는 이 시점,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은 정말 이 말씀대로 모든 일에 감사한가? 감사로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맥추감사주일이라니까 감사하려고 하는가? 나도 여러 목회상황을 생각해보면서 감사가 별로 없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말씀하고 요구하실까?’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아멘! 창조하신 후 방치하시지 않고 오늘도 만물과 역사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이시다. 아멘! 우리 인생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신 구원자이시다. 아멘! 그래서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게 하셨다. 아멘!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의 이생과 내생을 책임져주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정말 그렇다. 우리의 연약함과 환경을 보면 감사가 사그러들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으로 인해 모든 일에 감사가 가능해진다. 그러니 어찌 보면 감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불신앙하는 처사이다.  

살전 4:1,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주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부탁하며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서 배운 대로 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게 하십시오.” 바울사도도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면서 말미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더 힘써 살라고 강하게 권면한다. 그런데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1. 모든 일에 감사하려면…, 세 가지 해야 한다.

    1)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을 습관화해야 한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반년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자. 생명 연장해주신 것, 건강하게 일할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가족과 함께 평안하게 살게 된 것을 감사하자. 기도응답하신 것을 감사하자. 목장과 교회를 통해서 신앙생활 기쁘고 행복하게 한 것을 감사하자. 내가 수고한 사역에 열매가 있음을 감사하자.   

좋은 일 감사하는 게 당연한 것 같아도, 실제적으로 잘 못한다. 그러니까 나병을 고침 받은 10명 중에 오직 한 사람만 감사하지 않던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을 때 기분 좋아하면서도 하나님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이외로 많다. 감사를 말과 선물과 헌금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불평이 습관이 된 사람은 감사할 일을 만나도 불평한다. 불평이 습관이듯이 감사도 습관이다. 여러분은 불평 제조업자인가? 감사 제조업자인가? 매일 갖가지 불평을 찍어내고 있는가? 매일 갖가지 감사를 찍어내고 있는가? 감사를 습관화해라.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신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좋은 일을 가지고 더욱 감사하려면, 열심히 기도의 문을 두드려서 응답을 받는 재미를 알아야 한다. 기도를 구체적으로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기도응답을 많이 경험하게 되고 그럴 때 감사하게 된다. 기도를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사람은 응답되어도 응답된 줄 모은다. ‘어쩌다 됐겠지생각한다. 그러니 구체적 감사가 없다. 이게 목장에서 나눔 하기 전에 꼭 한 주간 기도응답 받은 것을 나누고 감사하게 하는 이유다. 나눔이 목장의 꽃이라면 기도는 그 열매다. 그러므로 나눔을 통해서 많이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기도응답의 좋은 일 때문에 많이 감사하기를 축원한다

    2) 평범한 일상에서 감사하는 걸 배워야 한다. 본 훼퍼가 쓴 신도의 공동생활이란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큰 것을 구하느라 날마다 받는 작은 선물은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온 작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큰 것을 맡길 수 있겠습니까?” 평범한 일상 속에 누리는 복을 알아보는 영적인 눈이 필요하다.   

미국의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매일 감사 일기를 쓴다고 한다. 1)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2)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 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4)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기 않았던 저의 참을성에 감사합니다. 5) 좋은 책을 잃었는데, 그 책을 써 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 세계적인 거장다운 거창한 게 없고 너무나 일상적인 사소한 일에 감사를 하고 있다. 그녀는 이런 감사 일기를 통해서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어디에 삶의 초점을 두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소확행이란 단어를 들어봤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앞 글자만 딴 요즘 애들의 유행어다. 한 초등학생이 축구하고 나서 크림빵 하나를 사서 먹는 것 그게 자신의 소확행이라고 하더라. 평범한 삶이 실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밝은 햇빛, 때를 따라 내리는 비, 어김없이 찾아드는 계절의 변화, 매일 비슷한 평범한 일상, 보통의 가정생활에서 행복과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을 발견하고 감사해야 한다. 꼭 교통사고 났는데 안 다쳐야 감사한가? 아니다. 아무 차사고 없이 매일 사는 게 더 감사한 일이다. 함께 신앙생활할 수 있는 교회와 목장 공동체가 있는 것, 올해도 그래도 나름 많이 변화되고 남을 생각하도록 성장한 것, 일할 직장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것, 아내와 차 한 잔을 나누는 것, 이런 게 다 소확행이다.  

요즘 우리 집에서 목장모임을 하는데, 나눔을 하는 걸 들어보니, 직장과 노인 부모님들 때문에 어려움이 참 많더라. 그런데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듣다가 답답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나눔 하면서 공감이 되고 눈물도 흘리고 그러면서 치유가 일어나고, 나중에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만지시고 위로해주시는 걸 보면서, ‘! 이런 공동체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참 행복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우리가 가정교회 목장에서 누리는 소확행이다.  

    3) 고난 가운데서 감사하는 능력을 훈련해야 한다. 위의 두 가지만 감사한다면 하나님의 뜻인 모든 일에 감사는 불가능할 것이다. 고로 모든 일에 감사하려면 감사할 수 없는 것까지 감사할 줄 아는 능력을 훈련해야 한다.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으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감사를 만들어서 하는 감사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감사할 수 있는가? 사람은 죽음이 끝이지만, 주님에게는 부활이 있다. 그를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죽음은 부활의 관문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이 땅의 고난은 우리를 성숙과 축복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통로이기에 변장된 축복일 뿐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기에 현실적으로나 내 감정으로는 안 되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과 그의 섭리를 바라보며 감사하기를 훈련하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반드시 이 모든 일들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다. 천지만물의 주재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내 편이시다. 반드시 도와주시고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믿고 주장하며 그 섭리를 믿기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역경 가운데서 만들어서 하는 감사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너무나도 고차원적 감사라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가능해진다.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찬양가사가 참 좋다. 어떤 이는 장미를 보고 왜 가시가 있느냐고 불평하지만, 어떤 이는 가시 중에도 장미가 피는 것을 감사한다. 장미꽃 감사는 이해하겠는데, 어떻게 장미꽃 가시까지 감사할 수 있을까? 응답하신 기도를 감사하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어떻게 거절하신 것도 감사할 수 있을까? 바울사도는 자신의 육체의 가시(안질, 간질?)를 치료해주지 않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하신 하나님의 응답을 오히려 감사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그건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주님에 대해 의심하고 있으면 그런 감사를 할 수 없다. 모든 일에 감사는 오직 만사를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줄 믿는 사람이 아니고는 고난을 감사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도 반드시 유익이 되게 하신다. 아멘! ‘되면 감사, 안되면 더욱 감사라는 말이 있다. 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감사하고, 안 되면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숨어 있으니 그것도 감사하라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내 뜻대로 안된 게 더 결과가 좋게 된 것을 깨달을 때가 참 많지 않나?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감사를 훈련하는 것이다. 이런 고난 중 감사가 하루아침에 되겠는가? 믿음의 성장과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여러분,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를 아는가? 겉보기에는 비슷하다. 그러나 감옥은 하루의 시작을 짜증과 불평으로 시작하지만 수도원은 감사로 시작한다. 수도원에 사는 사람이라고 늘 감사할까? 아니다. 그들도 하루를 감사기도로 시작하면서 감사를 매일 훈련한다. 열 가지 장미꽃 감사보다 한 가지 가시 감사가 더 어렵고 귀한 감사일 것이다. 장미꽃으로 열 번, 백 번 감사하는 것보다 가시로 인해 고통 받을 때 한 번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시고 축복해주신다. 왜냐하면 그런 감사는 성도의 간증이며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고백이며 복음증거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런 감사는 성숙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감사다

우리가 이렇게 역경 속에서도 좀 더 너끈히 감사할 수 있으려면 예수님 때문에 하는 감사를 훈련해야 한다. 아무 것도 없어도 예수님과 저 천국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초자연적인 감사다. 과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가능해진다. 모든 것을 다 빼앗긴대도 예수님은 나의 분깃이요 기업이시다. 무엇보다도 예수를 좋아해서 하는 감사는 세상 것을 송두리째 빼앗겨도 할 수 있는 최상의 감사다.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끝까지 하는 감사다.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감사다.

 

2. 역경 가운데 감사하기 위해 극복할 요소들

우리가 역경 가운데도 감사할 수 있으려면 다음 요소들을 극복할 때 가능해질 것이다.     

    1) 탐욕에서 벗어날 때 감사하게 된다. 탐욕은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다. 1:14-15,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15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욕심과 감사는 공존할 수가 없다.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욕심은 사탄에게, 감사는 하나님에게 속해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한 순간에 불평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바로 욕심이다. 인간의 탐심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광야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로부터 만나를 공급받으면서도 끊임없이 불평과 원망을 털어놓았다. 고기가 먹고 싶다. 그래서 메추라기를 보냈더니 이제는 애굽에서 먹던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이 먹고 싶다고 불평했다. 이 세상에 물질이 삶의 목표인 사람은 진실한 감사를 할 수 없다. 가져도, 가져도 탐욕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 기독교는 이 땅에서 천국을 살고 궁극적으로 저 완성된 천국에 가는 게 목표다. 천국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최고의 복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외로 천국에 대해 무덤덤하다. 기대나 감동이 없다. 이 세상 물질에만 꽂혀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가 실종되었다. 천국의 소망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에도 힘이 없고 낙이 없다. 그야말로 김빠진 맥주 꼴이다. 희망이 없는데 무슨 감사가 있겠나? 아무리 힘들어도 소망이 있으면 감사할 수 있다. 누가 하라고 해서 감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나안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자발적으로 감사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감사할 수 있다.   

살전 큐티 묵상을 새벽에 계속 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감사한다고 4번 표현했다. 그런데 모두 다 영적인 것에 대해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되어서 감사하다는 얘기는 한 마디도 없다. 함께 찾아보자! 살전 1:2, “우리는 여러분 모두를 두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내용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진 것과 주님과 바울을 본받아 주위에 소문만 교회가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 살전 2:13,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실제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도 여러분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 결과 예루살렘 교회처럼 데살로니가 교회도 로마제국의 박해와 고난 속에서 믿음을 지키고, 바울의 자랑과 영광의 면류관이 된 것을 감사하고 있다. 살전 3: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때문에 누리는 모든 기쁨을 두고, 여러분을 생각해서, 하나님께 어떠한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바울은 데살로니가 지역에 단 3주간 복음을 전하고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신해 이동했다. 고난의 소문을 듣고는 교회가 어떻게 되었을까 염려하며 기도했다. 그러다가 참다못하여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보냈고, 돌아온 디모데를 통해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살전 3:6, “지금 디모데가 여러분에게서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 여러분이 우리를 늘 좋게 생각하고 있어서, 우리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하여 주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에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오늘 본문에서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명령이다. 모두 다 영적인 감사뿐이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영혼 구원, 제자 만들기의 우선순위를 탁 붙잡고 살면 나머지는 책임져주신다. 출장인생 살면 출장비 책임져주신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출장인생의 목적을 망각하고 출장비 벌려고 애쓰며 살면 되겠는가?      

혹시 나는 이런 물질의 탐심 때문에 감사를 놓치고 살지 않은가? 있는 것을 자족하며 감사하는 자리로 나아가라.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4:12) 출장인생의 목적을 붙잡고 오늘을 감사하는 자가 내일의 복을 받게 되고 행복을 누리는 자가 된다.  

    2) 비교의식을 떨쳐버릴 때 감사할 수 있다. 비교의식은 상대방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우월감으로 교만해지든지, 아니면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자기비하에 빠지든지 하는 감정이다. 이 교만이나 열등감은 모두 다 자존심에서 나온다. 자존심은 타락한 자아에서 나오는 죄성이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교만하지도 않고 열등감이나 비굴함이 없이 대할 수는 없을까? 그런 걸 바로 높은 자존감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자존심은 버리고 자존감은 높아야 된다. 그게 건강한 사람이다. 왜 사람들이 자꾸 다른 사람과의 비교의식에 빠지고 그 결과 교만하거나 열등의식을 가질까?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별로 주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열등감이나 교만이 따르는 비교의식에 빠지면 감사하기 어렵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전에 본 적이 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생애를 그린 영화인데, 그 영화가 빛이 나는 것은 그 시대의 또 다른 음악가였던 살리에리의 역할을 맡은 배우(F. 머레이 아브라함) 때문이라는 평이다. 그 연기자가 안토니오 살리에르의 심리상태를 너무나 잘 연기해서 인간의 비교의식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살리에리는 당시 최고의 왕정음악가였다. 모차르트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모차르트와 자신의 음악을 비교하면서 그의 인생은 불행의 늪에 점점 빠지게 된다.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은 자신은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온 힘을 다해 작곡을 해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 모차르트는 여자들과 어울려 놀 것 다 놀면서 그저 자투리 시간에 취미 삼아 작곡하는 것 같은데도 그의 음악은 불후의 명작이 되어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는 거다.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것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자기 자신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절규한다. “하나님! 왜 저에게는 천재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만 주시고, 모차르트와 같이 천재적인 작곡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결국 비교의식과 열등감이 그의 인생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오늘도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비교의식으로 살도록 유혹한다. 시기와 질투의 노예가 되도록 전락시킨다.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가난에서 오는 슬픔도 아니고, 실패에서 오는 고통도 아니다. 재능이 모자라서 내뱉는 탄식이 아니다. 가장 큰 비참은 비교의식에서부터 온다. 참 어리석은 선택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비교의식에 사로잡힐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에게 일러라.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요, 하나밖에 없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또한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동료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저에게 최고의 사람입니다.” 그렇게 얘기해주라.   

    3) 염려를 기도로 극복할 때 감사하게 된다. 사람들이 염려하는 문제를 조사해보니, 오직 10%만 현재에 부딪힌 문제이지, 나머지 90%는 쓸데없는 과거의 일이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님은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6:34)라고 말씀하신 거다. 미래의 일을 앞당겨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사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우리가 살 수 있는 시간은 현재일 뿐이다. ‘현재라고 말하는 순간 그 현재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다. 그러니 정말 현재를 즐기며 염려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그럴 때 감사하게 된다.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우리 한국정부가 좌충우돌하고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그걸 염려한다고 해결되겠나? 내가 할 수 없는 영역 밖의 일을 내가 염려한다고 바뀌겠나? 그런 건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정부와 업계는 지혜를 짜내서 해결해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이 시험을 보고 나서 그 결과에 대해서 염려하고 걱정한다. 그런데 사실 이미 시험은 치른 것이고 그 결과는 염려한다고 달라질 게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공부하는 학생은 시험보기 전에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게 정답이고, 시험을 친 다음에는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하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평소에 공부할 때는 안 하고 염려만 하는 학생은 어리석은 학생이다. 시험 치르고 나서 결과에 대해서 염려하는 것도 마찬가지지로 어리석다.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거다. 우리는 늘 그걸 훈련하며 살아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리는 염려하기 딱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부만 그럴까? 우리 모든 삶이 그런 게 아닐까?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미리 염려할 필요가 뭐 있겠나? 그저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감사하게 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어 그 상황을 지혜롭게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그러니까 염려 대신에 자꾸 기도로 하나님에게 맡겨야 되고 오히려 역사하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마음에 염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 때 우리는 감사함으로 간구하면 되는 것이다. 결국 감사는 기도로 염려를 극복할 때 가능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vv16-18, “항상 기뻐하십시오. 17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구원의 기쁨을 가진 자가 쉬지 않고 기도할 때만 염려를 극복할 수 있고, 감사하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욕심이, 비교의식이, 염려가 우리의 모든 일에 감사를 방해한다. 이런 여러 가지 감사를 방해하는 것들을 극복하고 감사가 습관이 되도록 살아서 하나님의 금생과 내생의 복을 누리는 교우들이 다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마음을 넓히라. 계강현 목사 201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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