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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2019.08.11)
설교자     계강현 목사
예배명     주일 연합예배
성경본문     에스겔 17:11-24
 
 
본문 내용
11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12 "너는 저 반역하는 족속에게, 이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겠느냐고 물어 보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바빌로니아 왕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왕과 지도자들을 붙잡아 바빌로니아로 끌어 갔고,
13 이 나라의 왕족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와 언약을 맺고, 그에게 맹세를 시킨 다음에, 이 나라의 유능한 사람들을 붙잡아 갔다.
14 이것은 바빌로니아가 이 나라를 굴복시켜 독립하지 못하게 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만 명맥을 유지해 나가도록 하려 한 것이다.
15 그런데도 그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반역하여, 이집트로 사람을 보내서, 자기에게 많은 군마와 군인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언약을 어긴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16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그는 분명히 죽을 것이다. 바빌로니아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워 주었는데, 그 왕에게 한 맹세를 무시하고, 그와 맺은 언약을 깨뜨렸으니, 왕의 땅인 바빌로니아에서 그와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다.
17 바빌로니아 군대가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 그의 성읍 옆에 흙 언덕을 쌓고 높은 사다리를 세울 때에는, 이집트의 바로가 강력한 군사력과 많은 군사로도 전쟁에서 그를 도울 수가 없을 것이다.
18 그가 맹세를 무시하고 언약을 깨뜨렸다. 그가 언약을 어기고 이런 모든 일을 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그는 나의 이름을 두고 한 맹세를 업신여겼으며, 나의 이름을 걸고 맺은 언약을 깨뜨렸으므로, 내가 벌을 주어서, 그 죄를 그의 머리로 돌리겠다.
20 내가 그물을 쳐서 그를 망으로 옭아 바빌로니아로 끌고 가서, 거기에서 내가 나를 반역한 그의 반역을 심판하겠다.
21 그의 모든 군대 가운데서 도망한 사람들은 모두 칼에 쓰러질 것이며,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이렇게 말한 것이 나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22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백향목 끝에 돋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겠다. 내가 그 나무의 맨 꼭대기에 돋은 어린 가지들 가운데서 연한 가지를 하나 꺾어다가, 내가 직접 높이 우뚝 솟은 산 위에 심겠다.
23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내가 그 가지를 심어 놓으면, 거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고, 열매를 맺으며,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온갖 새들이 그 나무에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들이 그 가지 끝에서 보금자리를 만들 것이다.
24 그 때에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주가,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고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마른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줄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그대로 이루겠다."
Content


    

요즘 우리나라는 사면초과의 상황에 놓여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경제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WTO의 도움과 미국에 도움을 기대하고 있지만, 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하고 있는 형세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비행기가 영공을 침범하고 독도상공을 넘나들어 우리 비행기가 위협사격을 가하자, 일본은 또 다시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는 억지주장을 펼쳐 우리 억장을 무너지게 하고 있다. 적반하장이다. 미국은 중국을 향해 관세를 부과함으로 무역전쟁을 시작하더니 환율조작국이라고 비난하며 본격적인 전쟁을 벌일 모양새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에게 현재보다 5배가 되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산 넘어 산이라고 우리나라 주위에 모든 강대국들과 불편한 관계가 펼펴지고 있는 셈이고, 모든 나라가 온통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정황이다. 6월에 한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조우할 때만 해도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한 달 새에 갑자기 돌변하고 있다. 힘과 경제력이 약한 우리나라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진퇴양난, 사면초과에 몰려 있는 모양새이다.  

이런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을 하길 원하십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라와 민족의 문제만 그럴까? 우리 개인의 삶의 문제 가운데서도 우리는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온 세계를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인 동시에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다.  

17:1ff.를 보면 하나님이 어느 날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길,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비유를 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 내용은 두 마리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인데, 두 마리 큰 독수리 사이에서 포도나무가 어디로 가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 비유에 대한 해석과 적용 부분이다. 이 비유의 해석을 살펴보면, 남 유대 나라가 멸망을 앞둔 시점에서 경험하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과 관련이 있다.  

성경에서 포도나무는 대게 이스라엘을 상징하는데, 북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했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는 아직 남아있는 남 유대나라를 상징하고 있다. v3에 등장하는 독수리는 이 성경이 쓰이던 당시 북방의 강대국 바벨론이고, v7에 등장하는 독수리는 남방의 강대국 이집트이다. 포도나무가 두 강대국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은 유대나라 말기에 맨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왕이 친 바벨론 정책을 쓰다가 친 이집트 정책으로 갈아탄 것을 지적하고 있다. 시드기야 왕의 전 왕이었던 여호야긴 왕은 바벨론에 침략에 의해 폐위되었고 그의 숙부인 시드기야가 섭정 왕으로 세워졌다. 그러니 바벨론과 강제 동맹을 맺게 하고 조공을 바치고 복종하는 조건으로 왕으로 살게 하고 나라를 지키고 보호해주겠다고 약속받은 것이다.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는데, 그만 시드기야 왕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바벨론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그 라이벌인 이집트와 비밀동맹을 맺고는 군사적인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것이 발각되자, 분노한 바벨론 왕은 예루살렘을 쳐들어오고, 약속한 이집트는 군사적인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하자, 결국 시드기야 왕과 남 유대나라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이 비유의 내용이다. 이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코앞의 미래의 사건을 예언하고 있는 내용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언약을 파기한 시드기야 왕과 남 유대가 과연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신다. vv14-15, “이것은 바빌로니아가 이 나라를 굴복시켜 독립하지 못하게 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만 명맥을 유지해 나가도록 하려 한 것이다. 15 그런데도 그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반역하여, 이집트로 사람을 보내서, 자기에게 많은 군마와 군인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언약을 어긴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v18, “그가 맹세를 무시하고 언약을 깨뜨렸다. 그가 언약을 어기고 이런 모든 일을 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고대국가 시대에 나라 간에 동맹조약을 살펴보면 모두가 다 피의 맹약이다. 서로 간에 동맹을 맺고 피로 언약식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 만일 약속을 어길 경우에는 피의 보복을 하는 것을 조약에 명시하기 때문에 그런 보복조치와 죽음에 대해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남 유대의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과 맺은 언약을 어긴 것이다. 결국 그 일로 파급된 유대나라의 멸망을 통해 하나님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자.

 

1. 신앙인은 역사적 사건 배후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남 유대나라의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 나라와의 언약을 파기했다. 아니 사실은 남 유대는 그 이전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온 열방 가운데 세우시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이웃을 섬기라고 세워주셨다. 그런데 그들은 반대로 우상숭배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고 가난하고 약한 이웃들을 괴롭히고 착취하고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고 가산을 갈취하므로 언약을 어겼다. 선민사상에만 빠진 채 죄악을 범함으로 열국을 하나님에게 인도하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열국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욕을 돌리는 남 유대에 대해 하나님은 분노하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역사적 상황에서 볼 때에는 바벨론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열국을 침략했다. 거기에 딸려서 남 유대나라를 이미 두 차례나 침공하였고 왕과 고관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국의 이익에 따른 역사적 사건 배후에는 유다나라가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따라 살지 않고 반대로 우상숭배와 강포와 불순종한 죄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고 계신 것이다. 36:7, 너희는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 사람들보다 더 거스르는 사람이 되어서, 내 율례를 따르지도 않고, 내 규례를 지키지도 않고, 심지어는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 사람들이 지키는 규례조차 따라 살지도 않았다.” vv18-19, “그들이 죄 없는 사람들의 피를 흘려 그 땅을 더럽혔으며, 온갖 우상을 섬겨 그 땅을 더럽혔으므로,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아 부었다. 19 내가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그들을 여러 나라들 속으로 쫓아 보내며, 여러 나라에 흩어지게 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모든 일상의 사건 배후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여기 독수리로 나오는 바벨론이나 이집트도 뭐 대단히 의로운 나라가 결코 아니다. 언젠가는 심판받아야만 하는 나라이지만, 지금 남 유대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그런 걸 보면 우리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고민하고 해결해가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세계와 개인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과 행동을 똑바로 깨달아 알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가지고 행동하겠지만, 결국 그 일을 이뤄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나는 요즘 우리나라에 닥친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건들을 영적으로 한 번 생각해보고 묵상해본다.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향해서 경고하시는 것 같다. 우리 자녀들은 아이돌이 되겠다는 애들이 너무 많은데, 연예계는 성 동영상 파문과 마약, 도박사건 등으로 성적 타락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연일 교육계, 문학계, 종교계, 스포츠계 등 좀 성실하고 모범이 되어야 할 만한 그런 분야의 사람들에서 어울리지 않는 성폭력과 추행 소식이 들린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타락에서 비롯되었다. 계속 이어지는 자살소식으로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되어 있는 모양새다. 물질만능주의와 돈을 신으로 섬기는 배금주의 사상에 사회도 종교계나 교회조차도 타락되어 가고 병들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우리의 죄악에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경고하며 각성하라는 징계의 심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나가야 한다. 이런 때에 주변에 강대국을 의지할 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  

시드기야 왕과 남 유대 관리들과 백성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 당연히 하나님에게 우상숭배의 죄와 강포의 죄악을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켜야만 했다. 왜 하나님은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면서 에스겔 선지자로 하여금 전하게 하셨을까? 돌이켜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고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사랑의 외침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바벨론의 침공을 다른 강대국인 이집트를 의지해서 해결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 일이 성공했는가? 아니다. 실패하고 결국 나라가 멸망하고 말았다.  

만약 우리가 오늘의 이 난국을 미국이나 중국이나 WTO나 유엔 안보리나 다른 강대국을 의지하여 해결해 가려고만 고집한다면 어쩌면 시드기야 같이 헛 다리 집는 일일지 모른다. 먼저 우리 사회의 음란과 우상숭배와 폭력의 죄악을 회개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은 강대국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엎드려야 한다.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치하길 중보 기도해야 한다. 물론 하나님을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이 뭘 알겠는가? 우리와 같은 안목을 가지고 할 수 있겠는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렇게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문제를 바로 직시하고 온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가는 지혜와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2. 인간관계에서 하는 행동이 곧 하나님께 대한 행동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과 맺은 언약 및 맹세를 무시하고 배반했는데, 과연 죽음을 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신다. v15, “그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언약을 어긴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v18, “그가 맹세를 무시하고 언약을 깨뜨렸다. 그가 언약을 어기고 이런 모든 일을 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서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과 맺은 언약 및 맹세는 곧 하나님께 대한 연약 및 맹세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시다. v19,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그는 나의 이름을 두고 한 맹세를 업신여겼으며, 나의 이름을 걸고 맺은 언약을 깨뜨렸으므로, 내가 벌을 주어서, 그 죄를 그의 머리로 돌리겠다.”

왜 하나님이 이런 논리의 비약을 하시는지 한 번 생각해보라.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과 언약을 맺을 때 누구의 이름으로 맹세했겠나? 당연히 유대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신앙이 좋건 나쁘건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런 바벨론과의 언약 및 맹세를 파기하고 이집트와 손을 잡은 것이다. 이게 그냥 넘어갈 일이겠는가! 그래서 바벨론에 대한 언약 파기는 하나님에 대한 배반으로 간주되어 심판을 초래한 것이다. vv20-21, “내가 그물을 쳐서 그를 망으로 옭아 바빌로니아로 끌고 가서, 거기에서 내가 나를 반역한 그의 반역을 심판하겠다. 21 그의 모든 군대 가운데서 도망한 사람들은 모두 칼에 쓰러질 것이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이렇게 말한 것이 나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코람 데오(Coram Deo!)를 주창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신실함과 배반이 하나님에 대한 행동이 된다. 우리가 믿음이 좋던 나쁘던, 신앙이 강하던 약하든 결국 우리가 말하고 행하고 약속하고 그런 모든 일상의 일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우리가 잘못하면 예수님 욕 먹이게 되고 우리가 잘하면 하나님에게 영광이 된다. 결국 인간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결고리 가운데 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별개가 아니다. 하나님 관계 이웃 관계는 같이 가는 것이다.  

성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일관되게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양과 염소 비유를 통해서, 주린 자, 나그네, 가난한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같은 약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한 행동이 곧 자신에게 한 것이고, 그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예수님 자신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요일 4:20,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한다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라고 까지 강조해서 말씀하신다.  

어떤 분들은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기도하며 눈물도 흘리고 그런다. 그런데 돌아서서는 배우자하고 항상 갈등하고 싸운다. 목장식구들하고 자주 갈등하고 다투고 불편해하고 미워한다. 위아래 집 이웃하고 막 부딪치고 다툰다. 그리고는 또 필요할 때는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한다. 여러분, 이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건가?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은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별개가 아니라 같이 간다. 정말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웃과의 관계를 봐서 알 수 있다. 이웃과의 관계가 점점 좋아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다. 절대 분리하여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씀까지 하신다. 6:6-7,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답게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십시오. 7 사람에게가 아니라 주님께 하듯이, 기쁜 마음으로 섬기십시오.” 심지어 벧전 2:18, “하인으로 있는 여러분, 극히 두려운 마음으로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선량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그리하십시오.”라고까지 말씀하고 계신 이유이다. 우리 직장생활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나타나야 그게 진짜 신앙이다. 우리 직장 동료들을 전도할 때 이게 진짜 전도다. “내 주위에는 전도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런 얘기 하지 마라.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은 하나님과의 관계이지만, 구체적인 열매는 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 속에서 때때로 겪는 갈등을 질질 끌지 말고 빨리 해결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1) 차이점보다 공통점이나 보완점을 먼저 찾아라. 2) 참을 수 있는 일은 참아라. 3)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양보하라. 4) 오해를 풀기 위해 대화하. “그건 제 실수네요. 사과합니다.” 이렇게 대화를 풀기 시작하면 의외의 결과로 풀릴 수 있다. 5)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회의를 하라. 6) 경우에 따라서는 접촉을 피하라. 어떨 때는 부딪치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상책일 수도 있다. 피하고 좀 시간을 버는 것이다. 이럴 때 해야 할 중요한 것은 기도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만 일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다.

18:18-19,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우리가 인간관계 속에서의 갈등을 해결하고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만 있으면 기도응답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하나님 관계와 이웃 관계는 별개가 아니라 하나이고 따로 가지 않고 같이 간다

 

3.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통치자로서 회복과 새 출발의 역사를 이루신다.

v24, "그 때에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주가,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고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마른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줄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그대로 이루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v22ff.에서 이스라엘과 새로운 언약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신다. 만약 이 부분이 없다면 하나님은 파괴적인 정복자라고 왜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역사는 심판과 멸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건설적으로 회복되게 하신다.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에 지배받는다. 우리 죄인인 인간은 남을 미워하는 것이 굉장히 쉽다. 여러분, 노력해서 미워해본 적이 있는가? 그냥 미워하기는 너무 쉽다. 그러나 반면에 하나님에게는 진노하는 것이 엄청 힘들다. 하나님은 사랑이 본성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랑할 수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의 진노조차 사랑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고이는 사랑이다. 웅덩이만 파놓으면 물이 모이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낮은 곳으로 고이는 사랑이다. 낮은 곳이 어떤 곳인가? 약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 우는 사람에게로 하나님의 사랑이 자동적으로 쏟아진다. 하나님의 사랑은 낮은 곳으로 고이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남 유대를 심판하시는 거다. 우상숭배의 죄도 물론이거니와 남 유대는 죄없는 사람들, 고아와 괴부를 괴롭혔다. 그걸 하나님이 엄청 진노하신다. 22:7, “성읍아, 네 안에서 살고 있는 그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업신여기며, 네 한복판에서 나그네를 학대하고, 네 안에서 고아와 과부를 구박하였다.” 낮은 곳으로 고이는 하나님의 사랑에 역행한 짓이다. 그래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신다. 33:3, “네가 나를 부르면, 내가 너에게 응답하겠고, 네가 모르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너에게 알려 주겠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외면을 못한다. 낮은 곳으로 고이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고통당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자동적으로 쏟아진다. 42:3,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 왜 그러실까?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이것을 알 때 신앙생활에 여러 가지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고 파괴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원하시고 세워주신다. 결국 온 세상의 통치자로서 진정한 능력을 보여주신다. 이 본문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다. 하나님이 새 언약을 맺으시는데, 일방적이고 주도적으로 언약을 맺으신다. vv22- 24,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백향목 끝에 돋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겠다. 내가 그 나무의 맨 꼭대기에 돋은 어린 가지들 가운데서 연한 가지를 하나 꺾어다가, 내가 직접 높이 우뚝 솟은 산 위에 심겠다. 23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내가 그 가지를 심어 놓으면, 거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고, 열매를 맺으며,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온갖 새들이 그 나무에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들이 그 가지 끝에서 보금자리를 만들 것이다. 24 그 때에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주가,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고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마른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줄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그대로 이루겠다.”  

하나님이 백향목 끝에 돋은 자기를 꺾어다가 심겠다고 하시는데, 백향목은 다윗 가문을 의미한다. 끝에 돋은 가시를 꺾어다가 심는다는 것은 다윗 가문의 명맥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그 나무의 맨 꼭대기에 돋은 어린 가지들 가운데서 연한 가지를 하나 꺾어다가 하나님이 직접 높이 우뚝 솟은 산 위에 심겠다고 하신다. 여기서 연한 가지는 메시아를 나타낸다.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그 가지를 높이 우뚝 솟은 산 위에 심겠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높은 산, 바로 예루살렘의 시온 산이다. 시온 산에 심겨진 나무는 아름다운 백향목이 되어 생명을 선사하는 열매로 가득하며, 각종 새들이 깃드는 생명과 보호의 산실이 될 것이다. “거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고, 열매를 맺으며,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온갖 새들이 그 나무에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들이 그 가지 끝에서 보금자리를 만들 것이다.” 이것은 연한 가지인 메시아를 통해 이루실 풍성한 하나님 나라를 예언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예수님이 겨자씨 비유에서 인용하고 있다. 13:32,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된다. 그리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미 교회를 통해 성취되고 있고 마지막 재림을 통해 완성될 내용이다.     

우리는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산다. 그래서 죽음 앞에 직면하면 슬퍼지고 낙심하게 되고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주님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회복과 구원이 있고 부활이 있고, 새로운 출발이 있다. 옛 하늘과 옛 땅이 불에 녹아지고 사라지게 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전개된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그렇다. 그것을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확연히 눈으로 보게 되고 누리고 만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꼭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뿐인가? 아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그것을 맛보며 산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울 때에 고난의 때에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꼭 우리 기도한 대로 주시지 않을 때도 많지만, 반드시 가장 최선의 것으로 응답해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항상 해피엔딩이다. 우리의 인생은 해피엔딩 이다. 이렇게 이 나라와 민족과 사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있는 동안에는 이 나라와 민족은 해피엔딩이다. 작금의 어려운 현실에서, 여러분이 처한 고난의 현실에서 회개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새 출발하게 만들어주실 것이다. 그게 온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축복의 반열에 동참하여 그 주인공이 되라. 아멘.


 

포도나무 비유 계강현 목사 2019.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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