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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지를 개간하라! (2019.10.06)
설교자     계강현 목사
예배명     주일 연합예배
성경본문     여호수아 17:14-18
 
 
본문 내용
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가 큰 무리가 되었는데, 어른께서는 왜 우리에게, 한 번만 제비를 뽑아서 한 몫만 유산으로 가지게 하십니까?"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큰 무리이어서 에브라임 산간지방이 당신들에게 작다면, 거기에서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인 삼림지대로 올라가서 그 곳을 개간하시오."
16 요셉 자손이 말하였다. "그 산간지방은 우리에게 넉넉하지 못하고, 그 골짜기 땅 곧 벳산과 그 변두리 마을과 이스르엘 골짜기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다 철 병거가 있습니다."
17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 족속인 에브라임 지파와 서쪽 므낫세 지파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큰 무리요, 큰 세력도 가졌으니, 한 몫만 가질 일이 아닙니다.
18 산간지방도 당신들의 것이 될 것이오. 산간지방이라 하더라도, 그 곳을 개간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차지하시오. 가나안 사람들이 철 병거를 가져서 강하다 하더라도, 당신들은 그들을 쫓아낼 수 있소."
Content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이 말은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한 말이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 말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나님 대신 하늘이라고 표현하여 사용한다. 여하튼 이 말은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창조적으로 능동적으로 자신이 맡은 일과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자를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복 주신다는 뜻이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제비뽑기의 방법으로 했다. 주권을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맡기는 처사이다. 둘째, 지파별 20세 이상의 장정 인구수대로 땅을 분배하는 원칙이다. 인구 많은 지파에게 땅을 더 많이 주고 그리고 지파 안에 가족 단위로도 인구수에 따라 땅을 분배했다. 셋째. 이런 원칙이 있어도 약속을 우선으로 했다. 하나님이나 모세가 약속해준 땅은 무조건 주는 걸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요단 동편 땅은 이미 모세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목축하기 좋은 땅이기에 양과 소가 많은 자기 지파에게 달라는 요구에 따라 땅을 주었다. 또한 요단 서편의 땅도 제일 먼저 유다 지파를 분배할 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갈렙의 요청에 따라 헤브론 성읍을 할당해 주었다. 넷째, 이렇게 원칙에 따라 땅을 분배한 뒤에 요구하는 게 더 있으면 듣고 조정하는 걸 원칙으로 했다.  

그래서 17 앞부분에 므낫세 지파의 땅을 분배할 때 아들 없이 딸만 있는 슬로보핫의 딸들의 요청에 따라 이런 경우에는 딸들에게도 기업을 분배해 주었다. 단 조건이 있는데, 땅을 분배받은 딸들은 자기 지파 사람들과만 결혼하도록 제한했다. 지파의 기업이 다른 지파로 넘어가지 않고 보전하게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에는 땅 분배를 다 마친 뒤에 여호수아가 요구하는 에브라임 땅 중에 딤낫세라 성읍을 주었다. 여호수아는 정복자요 통치자요 지도자이지만, 제일 마지막에 땅을 요구했다. 그것도 지파 땅 안에서 평지도 아닌 산지 딤낫세라를 요청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자신은 종임을 마지막까지 잃지 않은 겸손한 자세다. 이걸 보면 땅 분배가 갈렙에서 시작하여 여호수아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12정탐꾼 중 두 사람만이 그 땅에 들어가 차지하리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요셉 지파 사람들이 땅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v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우리가 큰 무리가 되었는데, 어른께서는 왜 우리에게, 한 번만 제비를 뽑아서 한 몫만 유산으로 가지게 하십니까?’” 좀 불평이 섞인 말투가 느껴지지 않나? 두 지파인데 왜 한 번만 제비뽑게 했냐는 불만이다. 이때 여호수아가 대답했다. v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큰 무리이어서 에브라임 산간지방이 당신들에게 작다면, 거기에서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인 삼림지대로 올라가서 그 곳을 개간하시오.’” 여호수아는 요셉 지파 중에 에브라임 지파에 속해있지만, 팔이 안으로 굽지 않고, 공정하게 조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여호수아가 한 말, ‘산지를 개간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1. 불평 대신 감사하라는 뜻이다.

요셉 지파는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를 말한다. 그들은 자신을 큰 무리라고 부르고 있고 여호수아도 그걸 인정하고 있다. 사실 가장 큰 지파는 유다 지파다. 20세 이상의 장정만 따져서 그 인구수가 76,500명이다. 그런데 요셉 지파는 에브라임 지파가 32,500명 므낫세 지파가 52,700명으로 합하면 85,200명이다. 그래서 각 지파별 인구수로 따지면 유다는 1, 므낫세는 6위정도 된다. 그러나 에브라임 므낫세를 합치면 가장 인구수가 많은 지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므낫세는 복을 받아서 요단 동편과 서편 양쪽에 거대한 지역을 기업으로 받았다. 그러니 한 번만 제비뽑았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요셉의 후손들은 자신의 헌신과 노력으로 남보다 먼저 기업을 받은 게 아니다. 대상 5:1-2, “르우벤은 맏아들이지만, 그의 아버지의 잠자리를 더럽혔으므로, 그의 맏아들의 권리가 이스라엘의 아들인 요셉의 아들들에게 넘어갔고, 족보에 맏아들로 오르지 못하였다. 2 유다는 그의 형제들보다 세력이 크고, 그에게서 영도자가 났으나, 맏아들의 권리는 요셉에게 있었다.” 요셉의 후손들은 전적으로 조상 요셉의 은덕과 축복으로 장자의 명분을 받았다. 그래서 아들 두 명이 두 지파의 몫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요셉이 이집트에서 총리로서 전국이 흉년이 들었을 때 야곱과 그 후손들을 구원해낸 업적을 고려한 하나님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리고 광야생활 40년과 20년 가까운 가나안 정복 기간 중에도 하나님 은총으로 다른 지파보다 인구수가 더 많은 지파가 되었다. 그래서 유다 지파에 이어 다른 지파보다 먼저 비옥한 땅과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은 것이다.   

그러니 저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마땅했다. 그런데 오히려 저들은 불평했다. 그렇게 불평한 이유는 뭘까? 결국 따지고 보면 이기심과 욕심 때문이다. 아마도 요셉 지파 사람들은 지도자 여호수아가 자기네 지파인 걸 연관시켜 더 큰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미 내게 주어진 축복이 얼마나 큰 것임을 깨닫지도 감사하지도 못하고 불평을 털어놓은 것이다. 이기심과 욕심에 사로잡히면 결코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런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더 많이 더 많이 계속 부족함을 느끼며 입을 벌릴 뿐이다. 30:15-16, “거머리에게는 달라, 달라하며 보채는 딸이 둘이 있다. 전혀 배부른 줄 모르는 것이 셋, 만족할 줄 모르는 것 넷이 있으니, 16 곧 스올과 아기 못 낳는 태와 물로 갈증을 없앨 수 없는 땅과 만족하다고 말할 줄 모르는 불이다.” 욕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자족은 사라지고 대신에 불평과 원망이 터져 나오게 된다.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자족하며 사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딤전 6:6-9,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경건은 큰 이득을 줍니다. 7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떠나갈 수 없습니다. 8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9 그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립니다.” 4:12, “나는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여러분, 불평도 습관이 되는 걸 아는가? 불평은 마귀가 이용하기 좋아하는 습관성 죄악이다. 그래서 한 번 불평하기 시작하면 자꾸 불평하게 되고 이게 습관이 되면 나도 모르게 불평하고 있게 된다. 우리 주위에 보면 늘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노만 필 박사가 어느 날 열차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 한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그 부인이 계속해서 주변 환경에 대해 불평하는 소리가 들렸다. 좌석이 불편하고, 시트가 지저분하고, 청소도 제대로 안 되어있고, 승무원도 불친절하다는 등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때 부인의 불평을 듣고 있던 남편이 필 박사에게 인사를 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들을 소개하기를 저는 변호사이고 제 아내는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필 박사는 아니 부인께서는 어떤 걸 제조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남편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 아내는 불평을 만들어내는 제조업자입니다!~”  

여러분, 불평과 비난을 일삼는 남녀가 무덤에 연애하러 갔더니 무덤의 시체가 무서워서 도망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우리도 매사에 불평거리를 찾거나, 불평하는 게 습관화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믿음의 지각을 가지고 내게 주어진 것, 있는 것을 돌아보고 자족하고 감사하며 살자.

 

2. 불평만 하지 말고 주어진 것을 개간하라는 뜻이다.

요셉 지파의 불평에 여호수아는 이렇게 답했다. v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이 큰 무리이어서 에브라임 산간지방이 당신들에게 작다면, 거기에서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인 삼림지대로 올라가서 그 곳을 개간하시오.’” 이걸 보면 요셉 지파에게 이미 분배된 땅 자체가 작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정복하지 못한 땅이 아직도 남아있던 것이다. 여기서 브리스사람은 시골 사람이란 뜻으로 높은 산지에 사는 산지 족을 의미하고, 르바임 사람은 거인족이란 뜻이다. 참고로 3:11, “르바임 족속 가운데서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바산 왕 옥뿐이었다. 쇠로 만든 그의 침대는, 지금도 암몬 자손이 사는 랍바에 있다. 그것은, 보통 자로 재어서, 길이가 아홉 자(273cm)요 너비가 넉 자나 된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분배받은 땅을 개간하지도 않은채 땅이 좁다고 다른 땅을 더 달라고 하면서 불평했다.  

여호수아는 요셉 지파를 향해 불평만 하지 말고 이미 받은 산지 땅을 개간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개간하라’(v15, v18)라는 말이 두 번 나오는데, ‘바라 레하’(너를 위해 만들라, 잘라라)라는 말로 1:1,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베레쉬트’(태초에) ‘바라’(그 분이 창조하셨다) ‘엘로힘’(하나님이)”인데, 여기서 개간하다창조하다는 같은 히브리어 단어 바라가 사용되었다. 여기 17에서는 자르다’, ‘깨끗하게 정돈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어근 상, ‘바라’(창조하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본성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개간하라는 것은 창조정신, 개척정신을 의미한다.  

이미 요셉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땅에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족속인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인 삼림지대로 올라가서 그들을 몰아내고 우거진 숲과 나무를 잘라내고 깨끗하게 정돈하고 새로운 땅을 아름답게 조성하라는 얘기다. 개척 정신을 가지고 그 땅을 정복하고 개간하여 땅을 차지하고 넓혀서 사용하라는 얘기다. 그렇게 하면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천진암에 가보면 산을 가 개간하여 평지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본다.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 한국에서 가장 큰 교단인 장로회 합동 측에 목사로서 큰 교회를 담임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개척할 생각이 전혀 없던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이곳 광주에 교회를 개척하도록 인도하셨다. 생각해보면 가정교회를 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지 않았나 싶다. 교우들과 함께 가정교회를 하면서 개척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오늘 가정교회는 모두가 하길 꺼려한다. 정말 개척정신을 가지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힘들어도 남들이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고 주님의 소원이라면 우리는 하리라. 기신자 모으기 할 것인가? 비신자 전도해서 영혼구원 제자만들어 신약교회를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부흥을 이룰 것인가? vip가 없다고 불평하지 말아라. 아직도 우리 주위에 80%가 주님을 모른 채 지옥으로 가고 있다.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개척정신이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가지고 모든 나무도, 장애물도 다 개간해서 내 것으로 만들면 된다.

우리의 삶이나 가정이나 생업이나 목장 사역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작을지라도 개척하고 개간해서 큰 것으로 만들어서 써야지, 없는 것 때문에 늘 불평만 하고 살면 안 된다. 다 완성된 것을 우리 입에 넣어주길 기대하거나 받으려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목장과 교회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서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완성품을 주시지 않고 미완성품을 주시는 이유가 뭘까? 우리를 연단시키고 훈련시켜서 강한 자, 지혜로운 자, 부지런한 자로 만드시고 주님 닮은 성숙한 자로 만드시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개척정신을 가지고 상황을 개간해나가라!

 

3. 핑계할 구실만 찾지 말고 믿음으로 개간하라는 뜻이다.

여러분 중에 혹시 여기까지 말씀을 들으면서 속으로 그래도 나는 이것 때문에 안 돼! 할 수 없어!’ 그런 생각한 분 있는가? 여호수아의 말을 들은 요셉지파는 이런 핑계를 댔다. v16, “요셉 자손이 말하였다. ‘그 산간 지방은 우리에게 넉넉하지 못하고, 그 골짜기 땅 곧 벳산과 그 변두리 마을과 이스르엘 골짜기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다 철 병거가 있습니다.’” 요셉 지파는 적이 가진 ‘철 병거를 정복하지 못한 핑계로 삼았다. 여기 철병거란 아마 나무 마차에 철을 씌운 듯한 철 병거였을 거라고 BKC 주석에서 도날드 캠벨주석가는 말한다. 산간지방은 개간하면 된다고 쳐도 골짜기에 철 병거를 가진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낼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핑계다.   

사실 여호수아 15~17에 보면 사사기 느낌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 우리 신앙생활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는데 점점 그 은혜가 식는 수가 많다. 가나안 족을 다 진멸하라고 했는데, 유다 지파가 예루살렘 성에 사는 여브스 사람을 몰아내지 못했다.(15:63) 에브라임 지파는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뭔지 아나? “가나안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지파와 함께 살며 종노릇을 하고 있다.”(16:10) 여기 17:12-13을 보면 아예 좀 더 노골적이 된다. “므낫세 자손이 이 성읍들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땡에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13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해진 다음에 가나안 사람에게 노동을 시켰으나 그들을 다 쫓아내지는 않았다.” 여러분, 쫓아내지 못한 것인가? 쫓아내지 않은 것인가? 처음에는 수동적으로 쫓아내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능동적으로 쫓아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차라리 그들을 종으로 부리는 것이 편하고 좋았다는 얘기다. 그들의 삶이 윤택해지는 걸 더 원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역한 것이다!  

이때 여호수아는 뭐라고 했나? v18, “산간지방도 당신들의 것이 될 것이오. 산간지방이라 하더라도, 그 곳을 개간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차지하시오. 가나안 사람들이 철 병거를 가져서 강하다 하더라도, 당신들은 그들을 쫓아낼 수 있소.’” 신간지방도 개간하여 다 차지하라. 뿐만 아니라 골짜기에 적들이 철 병거를 가지고 있어서 강하다 할지라도 당신들이 능히 쫓아낼 수 있다! 벌써 생각이 다르지 않은가! 이 말씀을 여기에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남은 땅을 완전히 소유하려면 용기 있는 믿음으로 행동해야 함으로 가르쳐준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것을 가르쳐주려 하신다.  

자기네가 큰 무리라고 자랑하며 땅 좁다고 더 달라 할 땐 언제고, 철 병거 때문에 못하겠다는 건 또 뭐냐? 요셉 지파에게는 철 병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유다 지파 갈렙은 85세의 나이에도 두려움은커녕 믿음의 용기가 있었다. 이 얼마나 비교가 되는가! 두려움인가? 믿음인가? 사실 엄밀히 따져보라. 이스라엘이 지금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데 있어서 자기 힘으로 했나? 하나님의 힘으로 했나? 물론 그들이 싸웠다. 그러나 그들의 칼에 죽인 사람보다 하나님이 우박으로 죽인 자가 더 많았다. 여리고 성은 손 하나 까딱 하지 않고 그냥 돌다가 함락되어 전리품만 거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 요셉 지파에게 부족한 것이 무기인가? 믿음인가? 그들의 문제는 지금 믿음을 잃은 것이다. 용기를 잃은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까 용기가 없어지고 그러니까 철 병거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각자에게 철 병거라고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가? 그것 때문에 두려워지고 더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내가 더 크게 성장하고 성공하고 사역할 수 있기 위해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철 병거가 무엇인가? 뭘 하려고 할 때 마음에 딱 두려움이 생기는 게 뭔지를 생각해보라. 처음에는 잘 싸워도 약해서 이기지 못하다가 이제는 싸우길 싫어지고 그냥 타협하며 살고 싶고 안주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그게 여러분 각자의 철 병거인 셈이다.   

그걸 어떻게 제거하고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나? 그것은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뿐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나 가정생활이나 사역에 있어서 불평이 자구 터져 나오고 원망이 생기고 용기를 잃어버리고 의욕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9:25,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그런 하나님의 전쟁을 내 능력으로만 수행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싸우는 건데, 무기로 싸우려고 하기 때문에 용기를 잃고 불평하게 된다. 말씀과 기도로 싸워야 하는데, 말로 논리로 이치로 싸워서 이기려고 하니 갈등만 자꾸 생기는 거다.  

언제까지 상황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남 탓하고 환경 탓하며 핑계거리만 찾고 있겠는가? 안 될 요소만 찾으면 안 될 거리만 눈에 띈다. 그러나 믿음으로 될 요소를 찾아보면 가능해진다. 여호수아는 될 요소를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다. 여호수아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호수아의 믿음의 눈으로 우리도 상황을 봐야 한다. “아무리 대적이 강하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할 수 있다! 승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셔야만 가능한 일이고, 우리가 그것에 맞춰서 순종만 하면 된다. 토마스 왓슨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기보다 오히려 우리의 특권이다.”라고 말했다. 순종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터인데, 순종하지는 않고 불순종의 핑계와 구실만 찾고 있는 것이다. 아니 순종하지 않으니까,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고 자꾸 더 핑계거리만 찾게 되는 것이다.   

불평하지 말고 주어진 걸 감사하자. 불평대신 개척정신을 발휘하여 개간하자. 핑계거리만 찾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순종해서 각자의 철 병거를 제거하고 승리를 쟁취하라. 하나님은 그런 자를 도우신다. 아멘.


 

유다족장 갈렙의 신앙 계강현 목사 201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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